배양접시에서 키운 미니 장기(臟器)가 스스로 혈관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신장은 혈관이 있어야 혈액을 거르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 미니 신장과 심장, 폐가 실제 장기를 형태는 물론, 기능까지 똑 빼닮은 것이다. 앞으로 배아의 발생 과정을 연구하고 신약 후보 물질을 시험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혈관연구소의 조지프 우(Joseph Wu) 소장과 오스카 아빌레스(Oscar Abilez) 박사 연구진은 지난달 5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처음으로 자체 혈관을 가진 심장과 간 오가노이드(organoid)를 생성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베이징 줄기세포연구소의 먀오 페이(Yifei Miao) 박사 연구진도 지난달 30일 국제 학술지 셀에 폐 오가노이드를 배양하면서 혈관까지 같이 자라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미니 심장, 폐에 혈관까지 만들어
오가노이드는 장기(organ)에 유사하다는 의미의 접미사(-oid)를 붙여 만든 신조어다.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라고 불린다. 이전에는 주로 세포를 평면 배양접시에서 키워 인체 안에서 세포가 배열하거나 이동,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원시세포인 줄기세포로 심장과 간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세포가 혈관까지 형성하도록 유도했다. 그전에는 혈관이 될 세포를 별도로 배양하거나 3D(입체) 프린터로 혈관들을 찍어내고 여기에 심장 오가노이드를 결합시켰지만, 실제 혈관 시스템을 갖춘 오가노이드를 만들지 못했다.
연구진은 심근세포, 내피세포, 평활근세포라는 세 가지 주요 세포 유형을 생성하는 기존 방법을 검토했다. 심근세포와 평활근세포는 심장을 만들고, 내피세포는 혈관 안쪽을 이룬다. 연구진은 성장 인자의 종류나 양을 달리해 34가지 다른 배양 조건을 만들었다. 이 중 32번째 조건으로 배양하자 혈관이 생겼다.
연구진이 현미경으로 도넛 모양의 심장 오가노이드를 관찰했다. 안에는 심근세포와 평활근세포가 배열돼 있으며, 밖에는 혈관을 형성하는 내피세포가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혈관은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와 비슷한 10~10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로 실제 심장의 모세혈관과 비슷했다.
◇동물실험 대체하고 세포 치료도 가능
중국 베이징 줄기세포연구소 연구진은 폐 오가노이드에 혈관을 유도했다. 연구진은 장기 표면을 만들 상피세포와 혈관 세포를 동시에 배양했다. 발생 단계에서 두 세포를 자라게 하는 신호가 다르다. 먀오 페이 박사는 “한쪽을 살리려면 다른 쪽을 희생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함께 성장할 수 없다”며 “발생을 조절하는 여러 물질을 섞은 분자 칵테일의 투여 시점을 조절해 줄기세포에서 두 종류의 조직이 동시에 형성되도록 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생쥐에 이식된 폐 오가노이드는 가스 교환이 이뤄지는 폐포(허파꽈리)를 포함해 다양한 세포 유형으로 성숙했다. 혈관 세포 덕분에 폐포 주머니와 유사한 구조가 자발적으로 형성됐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오가노이드는 크기만 작지 실제 장기와 입체 구조가 같아 기존 인체 세포실험을 대체할 수 있다. 또 사람 세포여서 동물실험보다 인체 반응을 더 잘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4월 오가노이드를 동물실험의 대체 기술로 인정했다.
다만 오가노이드는 지금까지 형태나 구조는 장기를 똑 닮았지만, 자체 혈관이 없어 인체 신진대사를 완벽히 구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신장이 혈액을 걸러 소변을 만들거나 폐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데 반드시 혈관이 있어야 한다. 오가노이드가 혈관까지 갖추면 세포 자체 반응은 물론 장기 기능 변화까지 보여줄 수 없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앞으로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재생 치료의 길도 열 수 있다고 밝혔다. 조지프 우 교수는 미래에는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로 혈관까지 갖춘 심장 오가노이드를 배양해 손상된 조직을 대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빌레스 박사는 “이식용 오가노이드에 혈관 시스템이 있다면 원래 장기의 혈관과 연결돼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조립형 오가노이드 기술도 필요
다만 아직 혈관을 가진 오가노이드는 태아 발생에서 초기 단계까지만 구현했다. 다 자란 장기 상태는 아닌 셈이다. 혈관이 있어도 혈액을 순환시킬 수 있어야 미니 장기가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실제 장기처럼 작동하려면 여러 오가노이드를 연결하는 어셈블로이드 기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신장병을 치료하는 약물을 실험하려면 신장 오가노이드와 함께 간 오가노이드도 필요하다. 약물이 간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간 오가노이드도 있어야 약효와 함께 부작용까지 알 수 있다. 또 혈액을 순환시킬 심장 오가노이드도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이미 어셈블로이드로 실제 인체 반응을 더 정확하게 알아보고 있다. 세르지우 파스카(Sergiu Pasca)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는 이미 지난 5월 네이처에 뇌 어셈블로이드로 인간의 통증 신호 전달 경로를 구현했다고 밝혔다.
파스카 교수는 감각 신경세포부터 척수, 시상, 대뇌 피질까지 각각 오가노이드로 배양했다. 100일간 오가노이드들을 한 곳에 두고 키우자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돼 소시지 모양으로 자랐다. 상행 감각 경로를 보여주는 어셈블로이드가 탄생한 것이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을 어셈블로이드에 주입하자 신경신호가 감각 경로 순서대로 발생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u9375
Cell(2025),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5.05.041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88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