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구동 실험실(Self-Driving Lab, SDL)./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주도하는 ‘자가 구동 실험실(Self-Driving Lab, SDL)’이 과학 연구의 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연구진은 기존보다 10배 이상 많은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수집할 수 있는 자가 구동 실험실 기술을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엔지니어링(Nature Chemical Engineering)‘에 이날 게재됐다.

자가 구동 실험실은 AI와 로봇 기술, 화학·재료과학을 결합한 자동화 실험 시스템이다. 연구자가 목표를 제시하면 AI가 실험 계획을 세우고, 로봇이 실험을 진행한 후 결과를 분석해 다음 실험을 결정한다. 인간의 개입하지 않아도 연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지금까지 자가 구동 실험실은 ‘정상 상태 흐름’이라는 실험 방식에 의존해 왔다. 실험 물질을 섞고 반응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 결과물을 분석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실험 하나에 수십 분에서 최대 한 시간이 걸린다. 결과물의 특성을 분석하기 전까지 시스템은 사실상 멈춘다.

연구진은 이번에 ‘동적 흐름’을 새로 도입해 비효율을 없앴다. 실험 물질을 끊임없이 흐르게 하면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이다. 반응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0.5초마다 데이터를 저장한다. 반응 시간이 10초라면 20개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밀라드 아볼하사니(Milad Abolhasani)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교수는 “기존에는 한 장의 사진만 보던 실험을, 이제는 동영상처럼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며 “덕분에 시스템이 계속 작동하며 학습도 멈추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험 데이터가 빠르게 확보되면, AI의 예측 능력도 더욱 정밀해진다. 어떤 물질이 유망할지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실패를 줄이며 효율적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시스템은 같은 시간에 기존 방식보다 10배 많은 데이터를 수집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AI 시스템은 훈련 직후 바로 최적의 후보 물질을 찾아냈다. 실험 횟수가 줄어들면 사용되는 화학물질도 줄고, 그만큼 폐기물도 적게 나온다. 아볼하사니 교수는 “이번 기술은 연구 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실험이 빠른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연구하느냐도 미래 과학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AI가 가동하는 실험실은 비용이 계속 감소하면서 상용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3일 캐나다 토론토대의 학부생들은 500달러(약 69만원) 이하 비용으로 구축할 수 있는 자가 구동 실험실을 공개했다. 처음 레고 블록으로 초기 버전을 만든 뒤, 3년 동안 구조를 개선한 결과다. 필요한 부품 정보나 소프트웨어, 조립 방법은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해 누구나 따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연구를 지도한 제이슨 해트릭-심퍼스(Jason Hattrick-Simpers) 교수는 “과학에 참여할 기회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저비용의 자가 구동 실험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 Chemical Engineering(2025), DOI: https://doi.org/10.1038/s44286-025-00249-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