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게처럼 생긴 도구로 담낭(쓸개)관과 담낭 동맥을 각각 클립으로 묶은 뒤, 목표 부위를 수술 가위로 조심스럽게 절단했다. 언뜻 보면 의사가 집도하는 듯하지만, 이는 이른바 ‘자율 수술 로봇’이 사람의 개입 없이 돼지의 담낭을 절제하는 장면이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수술 로봇이 돼지의 담낭 절제 수술을 스스로 해내는 데 성공했다. 의사가 원격에서 조종하던 기존 수술 로봇과 달리,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수술을 집도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의료용 AI ‘SRT-H’를 탑재한 수술 로봇이 돼지 담낭 제거 수술 8건을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9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연구팀은 의사들이 돼지 담낭을 수술하는 영상들(총 17시간 분량)을 수술 로봇 SRT-H에 학습시켰다. 이를 통해 수술 로봇은 ‘담낭 잡기’ ‘클립 고정’ ‘담낭관 절단’ 등 17개 단계에 달하는 실제 수술의 세부 과정을 배웠다. 수술 로봇이 실수할 땐 연구팀이 예컨대 “왼팔을 오른쪽으로 더 움직여” 등 지시했다. 마치 수술실에서 의대 교수가 전공의를 교육하듯 실습 지도를 병행한 셈이다. 이를 통해 수술 로봇은 스스로 오류를 인식하고 수정하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SRT-H’ 수술 로봇은 돼지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을 총 8건 시행해 인간의 개입 없이 100% 정확도로 해냈다. 각 수술을 수행하는 데 걸린 평균 시간은 5분 17초였다. 연구팀은 “숙련된 의사보다 시간이 다소 더 걸리긴 했지만, 수술 궤적의 부드러움이나 정확성 면에서는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연구를 이끈 악셀 크리거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로봇이 복잡한 수술 절차를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며 “실제 환자 치료를 목표로 자율 수술 로봇을 고도화하는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자율 로봇 수술이 임상적으로 적용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수술은 사망한 돼지의 담낭을 대상으로 생체 밖에서 시행됐지만, 실제 살아있는 생명체의 몸속에서 이뤄지는 수술은 변수가 훨씬 많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팀은 “실제 생체 내 수술 환경에서는 조직이 움직이거나 출혈이 발생하는 등 추가적인 변수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