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떼서 도끼와 끌을 만들었다. 커다란 삼나무를 도끼로 벴고 이것으로 만든 통나무배를 타고 225㎞의 거친 바다를 건너갔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 얘기처럼 들리지만, 최근 일본과 대만 국제 연구팀이 발표한 실험의 내용이다.
‘3만년 전 인류는 어떻게 나침반이나 위성항법장치(GPS)도 없이 바다를 건너갔을까?’ 일본 도쿄대 고고인류학자 가이푸 요스케 박사팀은 이런 질문에 붙들렸다. 이들은 당시 인류의 대담한 항해를 직접 재현해보기로 했다. 2016~2019년 연구원과 탐험가를 모았고, 석기시대 방법으로 도구와 통나무배를 만들었다. 그렇게 2019년 7월 작은 배 하나만 타고 바다 건너 목표 지점으로 가는 데 성공했다. 구석기 시대 항해를 재현한 이들의 실험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최근 게재됐다.
◇‘구석기 인류의 항해’를 재현하다
가이푸 박사가 이 실험을 가슴에 품은 때는 2013년 무렵이다. 대만에 살던 이들이 일본 류큐제도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에 궁금증이 커졌기 때문이다. 류큐제도는 큐슈 남쪽부터 대만 북동쪽까지 1200㎞에 걸쳐 늘어진 여러 개 섬으로 이뤄진 군도(群島)다. 이곳엔 오래전부터 일본 본토와 구분되는 언어와 문화를 지닌 류큐인들이 살았는데, 이들이 이곳으로 처음 온 때는 기원전 3만년~3만5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 대만에 있던 인류가 바다 건너 일본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대만 북동쪽과 류큐제도 사이엔 구로시오 해류가 흐른다. 태평양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흐르는 해류다. 표면 유속이 최대 10㎞에 달할 정도로 빠르다. ‘이렇게 거칠고 험한 바다를 구석기인들이 별다른 항해 기술도 없이 무사히 건너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가이푸 박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016년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했고, 실험에 참가할 연구원과 탐험가 60명을 모았다. 구석기 유물이나 자료 연구만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고대 인류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보는 이른바 ‘실험 고고학’을 실천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구석기 방법을 동원해 여러 종류의 배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먼저 갈대 다발로 엮은 뗏목을 만들어봤다. 대나무 뗏목도 만들었다. 돌을 떼서 만든 도끼로 갈대와 대나무를 잘라 엮었다. 갈대·대나무 뗏목으로는 그러나 대만에서 류큐제도까지 바다를 건너갈 수가 없었다. 강한 구로시오 해류에 밀려 연일 목표 지점을 크게 벗어났다. 속력도 지나치게 느렸다. 실험에 실패한 것이다.
이번엔 통나무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돌도끼를 휘둘러 직경 90㎝ 아름드리 삼나무를 베어냈다. 겉은 도끼로 깎아냈고 속은 불로 태운 뒤 돌로 만든 끌로 다시 속을 파내어 길이 7.6m, 무게 800㎏ 통나무배 두 척을 완성했다. 배엔 ‘스기메’(일본어로 삼나무를 뜻하는 ‘스기’에서 따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완성된 배엔 5명 정도가 탈 수 있었다. 노를 잘 저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 바다를 건너는 연습을 시작했다. 돛 하나 없는 구석기식 통나무배는 불안정했고, 연구팀의 노 젓는 솜씨도 처음엔 영 서툴렀다. 제대로 노를 젓지 못해 배가 뒤집힌 적도 여러 번이다. 오랜 연습과 준비 끝에 2019년 7월 7일 오후 2시 38분, 연구팀 5명은 스기메를 타고 대만의 우시비 해안에서 출발했다. 목적지는 류큐제도의 요나구니섬이었다.
◇해와 별만 보며 45시간 동안 노를 젓다
연구팀은 바다에서 표류하는 등의 위기 상황에 대비해 나침반과 GPS 장치를 들고 스기메에 올랐지만, 바다를 건너는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낮엔 오로지 태양의 위치, 밤엔 흩어진 별들을 보며 방향을 잡았고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말 그대로 무(無)동력 항해였다.
가는 길은 계속되는 더위와 피로,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밤에도 자지 않고 쉬지 않고 노를 저어야 했기 때문이다. 팀원들은 너무 피곤하고 괴로울 땐 한 명씩 돌아가며 바다에 잠깐 뛰어들어 잠을 쫓은 뒤 다시 배로 올라오기도 했다. 2m 높이 파도가 종종 덮쳐와 통나무배에 바닷물이 들어찰 때도 있었다. 출발한 지 이틀 만인 7월 9일 오전 11시 48분, 연구팀은 류큐제도의 요나구니섬 해변에 도착했다. 45시간 동안 평균 시속 5㎞로 약 225㎞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가이푸 박사는 “이번 실험과 재현을 통해 고대 조상들이 진정한 도전자들이었음을 알았다”면서 “현대인 눈엔 석기시대 인류가 문화나 기술 면에서 열등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뛰어난 항해 기술과 공동체 조직력을 갖췄다”고 했다. 연구팀은 파도·풍속·해류 데이터를 종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당시의 항로·기상 조건을 정밀하게 복원하고, 앞으로 다른 형태의 배를 만들어 또다시 바다를 건너보겠다는 뜻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