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수천 광년 떨어진 우주 멀리서 구름처럼 모인 가스와 티끌 등이 분홍빛을 내뿜는 듯하다. 촘촘히 박힌 별들은 환한 푸른빛을 띠어 하늘 도화지에 화려한 물감을 뿌린 것 같다. 칠레에 있는 ‘베라 루빈 천문대’의 천체망원경으로 촬영한 사진의 일부다.
이 천문대를 운영하는 미 국립과학재단(NSF)은 24일 베라 루빈 천문대의 천체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지구상 천문대 중 가장 큰 시야와 해상도의 디지털카메라를 탑재한 베라 루빈 천문대는 1조원을 들여 10년간 건설 끝에 올 상반기 완공 예정이다.
베라 루빈 천문대 망원경은 사흘이면 남반구 하늘 전체를 관측할 수 있다. 카메라 해상도 또한 32억 화소로 역대 최고다. 찍은 사진을 해상도 그대로 한 화면으로 보려면 4K급 초고해상도(UHD) 텔레비전 400대를 연결해야 할 정도다. 최고 시력의 ‘큰 눈’으로 우주의 비밀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다.
베라 루빈 천문대 이름은 미국의 전설적 여성 천문학자 베라 루빈(1928~2016)에서 땄다. 여성 과학자의 이름을 붙인 미국 최초의 천문대다. 루빈이 20대 때 프린스턴대 대학원은 여성의 박사 과정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고, 30대 때 천문대에는 여성 화장실조차 없었을 정도로 남녀 차별이 심했다. 루빈은 별들이 은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예상보다 빠르게 회전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천문학계 석학으로 올라섰고, 미 국가과학상을 비롯해 최고 권위의 상들을 받았다. 그는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별의 물질로 이루어졌고 우주와 연결돼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루빈의 ‘커다란 눈’은 앞으로도 우주를 밝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