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80대 노인이 인공지능(AI) 도우미 로봇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을 뜬다. “편히 주무셨죠? 오늘 아침 혈압은 122에 78, 혈당은 103으로 안정적이에요.” 노인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자, 로봇이 곧장 팔을 뻗어 조심스럽게 허리를 받치고 부축한다. 식탁 위에는 정성스럽게 차려진 아침 식사가 이미 준비돼 있다. 로봇이 저염·저당 식단으로 맞춤 조리한 메뉴다.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이 모습들을 일상으로 실현하려는 과학기술계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고령화로 노인 돌봄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이전보다 기술을 고도화한 도우미 로봇을 선보이는 것이다.

◇보행 보조는 기본. 집안일도 척척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지난달 노인들의 신체 활동을 돕고, 낙상 사고를 예방하는 돌봄 로봇 ‘이-바(E-BAR)’를 공개했다. 이 로봇은 피트니스센터의 운동 기구처럼 생겼다. 체스트 프레스나 버터플라이 머신처럼 등을 기댈 수 있게 지지대가 있고 팔꿈치를 얹을 수 있는 팔걸이도 있다. 대신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처럼 얼굴이 있는 건 아니다. 일종의 보행 보조 로봇인 셈이다. 사용자는 이 로봇에 의지해 손쉽게 앉거나 일어설 수 있고,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다. 고령의 노인이 넘어질 땐 이 로봇이 측면에서 에어백을 빠르게 부풀려 안전하게 보호한다. 이번 로봇을 개발한 MIT 연구진은 “많은 노인이 일상 속 위험을 지나치게 두려워해 운동을 꺼리다 보니 더 연약해진다”며 “로봇 ‘이-바’를 사용하면 누구든 안전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노인에게 치명적인 낙상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는 버튼과 레버를 조작해 로봇을 조작하지만 앞으로는 대다수 기능을 자동화해 로봇이 자율 동작으로 사용자를 돕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픽=양인성

일본 와세다대 연구진은 요양 로봇 ‘아이렉(AIREC)’을 지난 2월 선보였다. 요양원의 환자가 앉거나 일어서는 동작을 도울 뿐 아니라 섬세한 손동작으로 환자를 돌볼 수 있다. 예컨대 장시간 누워 있는 환자의 몸을 옆으로 천천히 돌려 침대에서 등을 떼게 하거나, 부드럽게 일으켜 세워 욕창을 예방할 수 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환자의 기저귀도 갈아줄 수 있다. 환자의 양말을 신겨 주는 기능도 개발하고 있다. 또 간단한 계란 요리, 빨래 개기 등도 새로운 임무로 실험하고 있다. 이 로봇은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가 투자한 ‘문샷 연구(Moonshot·달 탐사처럼 야심 찬 연구)’의 일환으로 개발됐다. 5년 후 일본 전역의 요양병원에 이 로봇을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대당 가격은 1억원대로 책정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스페인 카를로스 3세 대학 연구진은 돌봄 로봇 ‘아담(ADAM)’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팔 끝에 손처럼 달린 집게로 테이블 세팅, 컵에 물 따르기, 물건 옮기기 등 다양한 집안일을 수행할 수 있다. 로봇 청소기처럼 집 구석구석 공간을 식별하고, 모방 학습 기능을 통해 동작을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다.

◇AI가 로봇의 섬세한 돌봄 구현

돌봄 로봇은 최근 급격히 발전한 AI를 탑재하면서 노인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 기능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학원이 지난달 공개한 돌봄 로봇 ‘샤오리’는 노인과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하고, 일상 생활 보조, 안전 보호, 긴급 호출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예컨대 노인 환자가 정해진 시간에 약을 복용하도록 안내하고,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맞춤형 대화를 이끄는 식이다. 샤오리는 이미 중국 베이징과 청두의 일부 요양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개발한 돌봄 로봇 ‘래미’는 AI 기술로 환자의 건강 상태를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로봇은 키가 성인의 무릎 높이 정도로 작은 편이지만, 자체 센서를 통해 환자의 심박수, 혈압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래미를 개발한 연구진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혁신상을 탔다.

돌봄 로봇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령층이 선호하는 로봇에 대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일본 교토의 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는 로봇의 신체 접촉이 인간 감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최근 발표했다. 로봇의 신체 접촉이 노인의 긍정 감정을 높이는 데 유용하다는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초고령화 시대에 노인 돌봄 로봇 개발은 큰 의미가 있다”며 “이용자 연령에 따른 감성적 특성을 반영한 로봇 설계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