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질환 치료는 원하는 유전자만 정확하게 바꾸는 ‘유전자 정밀 편집’이 중요하다.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세포 내 자가포식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성공률이 낮았던 유전자 정밀 편집의 효율을 높였다.
남혜진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연구진은 조동현·배상수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연구진과 공동으로 다양한 자가포식 유도 방법을 통해 유전자 교정 효율을 크게 높였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핵산 연구(Nucleic Acids Research)’에 지난 4월 게재됐다.
유전자 가위(CRISPR–Cas9)는 DNA를 자를 수 있는 효소 ‘Cas9’을 이용해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는 혁신 기술이다. 다만 잘린 부위를 붙이는 디옥시리보핵산(DNA) 복구 과정이 대부분 부정확한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원하는 방식으로 정확하게 유전자를 교정하는 ‘정밀 교정(HR)’의 효율은 매우 낮았다. 이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나왔으나, 독성, 부작용, 적용 범위 제한 등의 문제로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세포가 손상된 성분을 제거·재활용하는 ‘자가포식’ 과정이 정밀 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굶주린 세포는 자가포식 과정 중 DNA 손상 복구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을 분비하는데, 이를 적절히 유도해 정밀 교정의 효율을 높인 것이다.
우선 세포에게 영양분이 없는 식염수만 주거나, 세포의 성장 신호 억제제를 투입해 자가포식을 유도했다. 그러자 DNA 손상 복구에 작용하는 다양한 핵심 보조 인자들이 유전자 가위 효소인 ‘Cas9’ 주변에 많이 모여들었다. 분석 결과, 자가포식이 유도된 세포에서는 정밀 교정 효율이 1.4~3.1배 높아졌고, 삽입할 DNA의 크기나 타깃 유전자 발현 수준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성능이 높아졌다.
질병 모델 실험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청각장애 유발 유전자인 ‘MPZL2′ 변이를 보유한 환자 유래 세포에 본 기술을 적용하자, 정상 유전자가 도입된 리보핵산(RNA)의 발현량이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이 세포 수준을 넘어서도 유효한지 검증하기 위해 생쥐의 망막 색소 상피 조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Cas9 유전자 가위와 형광 단백질 유전자를 담은 DNA를 생쥐의 망막 아래층에 주사로 주입하고 동시에 자가포식 유도제를 안구 내에 투여하자, 유전자 교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생체 환경에서도 자가포식 유도가 정밀 교정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나아가 기존 유전자 가위의 변형 버전인 닉카제 Cas9(nCas9)이나 불활성 Cas9(dCas9)의 경우에서도 동일한 효과가 관찰돼, 이번 기술이 다양한 유전자 편집 플랫폼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자가포식을 활용한 정밀 교정의 효율 증대는 기존의 여러 유전자 교정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며 “이번 기술을 다양한 질환 관련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통해 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Nucleic Acids Research(2025), DOI: https://doi.org/10.1093/nar/gkaf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