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인해 동유럽부터 동아시아까지 유라시아 전 지역에서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빈발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지훈 세종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진은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가 유라시아 대륙의 폭염과 가뭄을 동시에 악화시키는 새로운 대기 순환 패턴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3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1980년대 이후 유라시아 대륙에서 여름철 폭염과 가뭄이 자주 발생하고, 그 강도도 매우 세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과거에는 폭염과 가뭄이 각각 따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으나, 최근 20년 사이 두 현상이 같은 지역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유를 찾고자 했다.
기존에는 ‘지구규모 원격상관(global teleconnection)’이라 불리는 대기 흐름의 광범위한 변화에서 그 원인을 발견했다. 이는 지구의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나 기후 변화가 수천㎞ 떨어진 다른 지역의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 연구는 지구규모 원격상관 패턴의 한 종류인 ‘유라시아 횡단 폭염-가뭄 파동 열차(TEHD)’가 유라시아의 폭염, 가뭄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TEHD는 유럽, 러시아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지나 동아시아까지 고기압을 이어주는 대기 파동의 일종이다.
이 대기 패턴은 북대서양의 해수면 온도 상승과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강수량 증가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온난화로 북대서양 수온이 상승하면 상공에서 강한 공기 흐름이 발생한다. 여기에 아프리카 사헬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면 대기 상층에 열을 공급해 대기 파동을 더 자극한다. 액체가 열을 흡수하면 증발해 기체가 되고, 반대로 기체(수증기)가 액체(비)로 바뀌면 열을 발산한다.
수온 상승과 강수량 증가가 겹치면 대기 흐름을 자극해 유라시아의 고기압이 강해지고, 이로 인해 폭염이 몰려오고 땅속의 수분을 증발시켜 심각한 가뭄이 폭염과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기압은 뜨거운 공기를 가두고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 폭염과 가뭄을 심화시킨다.
연구진은 유라시아 전역 33곳에서 수집한 300년에 걸친 나무 나이테 자료를 종합 분석해 TEHD 패턴의 변화를 분석했다. 나이테는 나무가 매년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는데, 해당 시기의 기후 조건을 반영하는 ‘자연의 기록장’과 같다.
분석 결과, 최근 몇십 년간 TEHD 패턴의 강도는 과거 300년 중 가장 강력했다. 특히 2010년 이후가 가장 강했다. 2010년 러시아 대폭염과 2022년 동아시아 가뭄은 TEHD 패턴이 극심했던 해에 발생했다.
최신 기후 모델로 예측한 결과, 현재와 같은 탄소 배출이 지속될 경우 TEHD는 21세기 내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나왔다. 폭염과 가뭄의 빈도와 강도 모두 상승할 것이라는 뜻이다. 반면 지구순환 원격상관 패턴은 뚜렷한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약해졌다.
유라시아 지역은 세계 주요 곡창지대 중 하나다. 이곳에서의 극단적인 폭염과 가뭄은 전 세계 식량 공급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은 인간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연구진은 “기후 변화는 산불, 농업 생산 감소, 식량 안보 위협, 물 부족, 생태계 파괴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이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를 완화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r7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