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dune)에서 인간은 한없이 초라한 미물과도 같다. 지난 28일 국내 개봉한 영화 ‘듄: 파트2′는 1만191년이란 아득한 미래를 배경으로 광활한 사막 행성에서 벌어지는 우주 제국의 전쟁을 그렸다. 과학자들이 우주에서 영화의 실제 무대와도 같은 모래 언덕을 찾았다. 화성에서 수천㎞에 걸쳐 펼쳐진 모래 언덕이다.

유럽우주국(ESA)은 지난 28일(현지 시각) 무인 화성 탐사선인 마스 익스프레스(Mars Express)가 화성 북극 근처에서 찍은 광활한 모래 언덕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지형은 북극을 둘러싼 ‘플라넘 보름(Planum Boreum)’이다. 라틴어로 ‘북쪽 평원’이라는 뜻이다.

화성 북극 주변 지형의 고도를 보여주는 사진. 붉을수록 높고, 낮을수록 파란색을 띤다./ESA

◇1㎞ 높이의 얼음 장벽이 만든 그림자

화성의 북극은 미세 먼지와 얼음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 두께가 수 ㎞이며, 프랑스의 폭에 해당하는 1000㎞에 걸쳐 뻗어있다. 북극을 둘러싼 북쪽 평원은 사진 오른쪽에서 시작한다. 고도를 보여주는 컬러 사진에서 색이 붉을수록 고지대이고 낮은 곳은 파란색 계열이다. 지반이 계단 모양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이곳에 주목하는 것은 각 지층이 수백만년 동안 화성의 기후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줄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SA는 “먼지와 얼음, 서리가 섞인 채 오랜 시간에 걸쳐 지면에 쌓이면서 현재 평원의 계단식 지층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상은 지난해 4월 14일 탐사선에 에 장착된 ‘고해상도 스테레오 카메라(HRSC)’로 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 카메라는 독일항공우주센터(DLR)가 개발했다. 겨울에 찍었다면 지층 위에 몇 m 두께로 드라이아이스(이산화탄소 얼음)가 덮인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드라이아이스는 여름이 되면 대기로 사라진다.

화성 북극 주변 지역을 비스듬하게 보여주는 투시도. 앞쪽에는 광활한 물결 모양의 모래 언덕이, 그 너머에는 수 km 높이의 얼음 절벽이 보인다./ESA

사진 가운데 세로로 선 두개가 보인다. 오른쪽 고지대와 왼쪽 저지대를 가로지르는 절벽이다. 북극에 가까운 오른쪽 절벽까지는 컬러 지형도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북쪽 평원이고, 왼쪽 절벽부터는 파란색 ‘올림피아 평원(Olympis Planum)’이다.

올림피아 평원에는 물결 모양의 모래 언덕이 150㎞ 이상 펼쳐져 있다. 이는 오른쪽 북쪽 평원의 매끈한 지형과 대조된다. 북쪽 평원의 표면이 매끄러운 것은 우주에서 날아온 암석이 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형이 젊다는 의미다.

또 오른쪽 절벽을 보면 반원형 지형 두 개가 보인다. 그중 큰 쪽은 폭이 20㎞에 이른다. 절벽의 반원 안쪽은 서리로 덮여 하얗게 보인다. 절벽의 높이는 1㎞에 이르러 사진에서 뚜렷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거대한 얼음 장벽이 있는 셈이다.

위쪽이 북극에 가까운 북쪽 평원(Planum Boreum, 녹색)이고 아래쪽이 그보다 지대가 낮은 올림피아 평원(Olympia Planum, 파란색)이다. 흰색 상자 부분이 2023년 4월 14일 마스 익스프레스가 촬영한 지역이다./ESA

◇물 흔적 포착해 화성 생명체 가능성 제시

마스 익스프레스는 ESA 15개 회원국이 러시아와 함께 개발한 유럽 최초의 화성 탐사선이다. 2003년 6월 2일 러시아 소유즈 로켓에 실려 발사돼 그해 12월 25일 화성 상공 273㎞의 타원궤도에 도달했다. 탐사선은 ‘시각 모니터링 카메라(VMC)’로 화성 표면을 촬영해 3차원 이미지를 만드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화성 익스프레스는 지난 20년 동안 화성의 궤도를 돌며 많은 성과를 거뒀다. 탐사선은 다양한 과학 장비를 탑재하고 지질, 기후, 대기를 연구해 화성의 진화와 생명체 가능성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특히 생명체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을 발견했다.

이번 영상을 찍은 고해상도 스테레오 카메라는 화성의 가로세로 15m를 화소 하나로 보여주는 영상을 촬영했다. 마스 익스프레스는 이 카메라로 2005년 2월 2일 화성의 북부평원인 ‘바스티타스 보레알리스(Vastitas Borealis, 북부 황야)’에서 얼음이 있는 충돌구를 촬영했다.

화성 탐사선 마스 익스프레스가 얼음이 있는 충돌구 위를 지나가는 모습의 상상도. 마스 익스프레스는 2005년 고해상도 스테레오 카메라(HRSC)로 화성의 바스티타스 보레알리스(Vastitas Borealis, 북부 황야)에서 가운데 얼음이 있는 충돌구를 촬영했다./ESA

마스 익스프레스는 레이더로도 화성 표면과 지하에서 물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 레이더는 화성의 북극에서 지하 얼음층을 발견했다. 이곳은 지구 남극의 얼음 아래 약 4㎞ 지점에서 발견된 보스토크 호수를 연상시켰다. 마스 익스프레스의 탐사 결과는 화성에 생명체가 살았거나 지금도 살아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참고 자료

ESA(2024), https://www.esa.int/Science_Exploration/Space_Science/Mars_Express/Sand_dunes_meet_stacked_ice_at_Mars_s_north_pole

ESA(2005), https://www.esa.int/Science_Exploration/Space_Science/Mars_Express/Water_ice_in_crater_at_Martian_north_p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