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비만약 주사를 맞고 체중은 줄었지만 속이 울렁거려 혼났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약을 바꾸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많이 쓰는 비만약보다 후발 주자가 부작용이 적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연구진은 동물실험에서 티르제파타이드 성분이 세마글루타이드보다 위장관 부작용이 덜하다는 사실을 동물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렸다.
티르제파타이드는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의 성분이고, 세마글루타이드는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에 들어간다. 최근 체중 감량 효과에서 젭바운드의 우위가 확인됐는데, 이번에 부작용도 적게 나와 향후 비만약 시장의 판도가 바뀔지 주목된다.
젭바운드와 위고비는 모두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이다. 식후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을 모방한 약물로,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은 억제해 포만감을 높인다.
GLP-1 계열 비만약은 모두 두 자릿수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여 전 세계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지만 약물 사용이 늘면서 다양한 부작용도 잇따라 나타났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메스꺼움이나 구토 같은 위장관 부작용이다.
연구진은 설치류에게 세마글루타이드와 티르제파타이드를 투약하는 실험을 했다. 약물은 피하주사나 경구 투여의 방식으로 일정 용량을 반복해서 투여했다. 실험 결과 전반적인 체중 감량 효과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부작용은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연구진은 실험 동물의 메스꺼움을 확인할 수 있는 카올린(kaolin) 섭취량을 살폈다. 카올린은 화장품이나 도자기 등에 사용되는 점토 광물로 섭취하면 메스꺼움을 유발한다. 세마글루타이드을 투여한 동물은 피르제파타이드 투여군보다 카올린 섭취량이 많았다.
GLP-1을 모방한 약물에는 카올린 성분이 있다.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동물에서는 카올린 성분이 많이 검출되는데, 위 억제 펩타이드(GIP) 작용제를 함께 쓰는 티르제파타이드 투여군에서는 카올린 성분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위고비를 복용한 많은 환자가 메스꺼움 때문에 복용을 중단하기도 했다. 앞선 연구에서 세마글루타이드를 복용한 환자의 44.2%가 메스꺼움을 경험했고, 24.8%는 구토를 호소했다. 이런 부작용은 대부분 약물을 복용한 지 20주 안에 발생했다.
젭바운드는 이전부터 메스꺼움이나 구토 같은 부작용이 위고비보다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티르제파타이드는 GLP-1뿐 아니라 GIP에도 작용한다. GIP는 지방세포를 분해하고 메스꺼움을 줄여준다.
연구진은 “티르제파타이드의 GIP 수용체가 항구토 작용을 유발해 메스꺼움과 구토를 억제했다”며 “GLP-1 수용체 작용으로 인한 메스꺼움과 구토, 혐오 반응 같은 부작용은 줄이면서도 체중 감소와 혈당 개선 같은 효과는 유지했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현재 가장 효과적인 비만 치료제이자 제2형 당뇨병 치료제인 두 약이 부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며 “위장관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약물 설계를 위한 연구”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학계뿐 아니라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위고비는 2021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DA) 승인을 받고 출시됐고, 젭바운드는 2023년 12월 후발 주자로 시장에 나왔다. 빨리 나온 만큼 위고비는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했고,젭바운드는 그 뒤를 쫓았다.
최근 비만약 시장의 전세가 바뀌고 있다. 체중 감량 효과에 이어 부작용까지 젭바운드의 우위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웨일 코넬 의대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두 약을 직접 비교한 임상시험에서 젭바운드가 위고비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컸다고 발표했다. 젭바운드를 투여한 환자는 체중이 평균 20.2% 감소한 반면, 위고비 투여 환자는 13.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젭바운드는 이번에 부작용도 위고비보다 덜 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시장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비만약 출시 초기에 일라이 릴리가 생산시설이 부족해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지만 최근 이 문제도 해결됐다. 약 자체의 효능이 확인되고 공급 문제도 해결되면서 비만약 시장 1위가 바뀔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5), DOI : https://doi.org/10.1126/sciadv.adu1589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2025), DOI: https://doi.org/10.1056/NEJMoa2416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