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비만 치료제 오젬픽(Ozempic)과 위고비(Wegovy) 개발에 기여한 과학자 다섯 명이 올해 브레이크스루상(Breakthrough Prize) 수상자로 선정됐다.
브레이크스루재단은 5일(현지 시각) 캐나다 토론토대의 대니얼 드러커(Daniel Drucker) 교수, 미국 하버드 의대 조엘 하버너(Joel Habener) 교수, 덴마크 코펜하겐대 옌스 율 홀스트(Jens Juul Holst) 교수, 뉴욕 록펠러대 스베틀라나 모이소프(Svetlana Mojsov) 교수,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로테 비에레 크누센(Lotte Bjerre Knudsen) 고문 등 5명이 비만 치료제를 낳은 과학적 성과로 올해 브레이크스루상 생명과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브레이크스루상은 2012년 러시아 출신 벤처투자자 유리 밀너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등이 만든 기초과학상이다. 2013년부터 기초물리학, 생명과학, 수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연구자에게 수여했다. 상금은 노벨상의 두 배가 넘는 300만달러(한화 43억 8450만원)이다. 실리콘 밸리의 부호들이 제정하고 시상식에 과학자는 물론, 기업가와 할리우드 배우들도 대거 참여해 ‘실리콘 밸리의 노벨상’, ‘과학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린다.
올해 생명과학 부문 세 그룹에 돌아갔다. 먼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을 발견한 과학자와 이 발견을 바탕으로 약물 개발을 주도한 과학자들이 받았다. GLP-1은 음식을 먹으면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면서 동시에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 분비는 억제한다.
1990년대에 드러커 교수는 GLP-1이 동물의 식욕을 줄이고 체중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크누센 고문은 GLP-1에 지방산 사슬을 추가해 구조를 안정화시켜 주사 후 빠르게 분해되지 않도록 개발했다.
노보 노디스크는 GLP-1 유사체로 먼저 당뇨 치료제 오젬픽을 개발했다가, 나중에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돼 비만약 위고비로 발전시켰다. 위고비는 소화 속도를 늦춰 적은 식사로도 더 오래 포만감을 제공한다. 위고비가 미국 시장에서 열풍을 일으키자, 미국 일라이 릴리를 비롯한 여러 제약사가 GLP-1 계열 비만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GLP-1 개발의 초석을 다진 드러커 교수는 “권위 있는 상을 받게 돼 대단한 영광”이라며 “하지만 가장 큰 보람은 ‘나는 18㎏을 감량했고, 건강을 되찾았어요’라고 말하며 내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을 만날 때”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의 스티븐 하우저(Stephen Hauser) 석좌교수와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알베르토 아쉐리오(Alberto Ascherio) 교수는 다발성 경화증(MS)에 대한 이해와 치료법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공로로 수상했다.
다발성 경화증은 인체의 면역 세포가 외부 침입자 대신 척수나 신경세포를 감싼 보호막인 미엘린을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미엘린이 파괴되면 신경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온몸이 굳어버리고 시력마저 손상된다.
하우저 교수는 면역세포인 B세포가 신경 세포 손상의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B세포 파괴 치료법의 개발과 시험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쉐리오 교수는 다발성 경화증 발병의 필수 조건인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감염을 발견했다. 그는 EBV에 감염되면 다발성 경화증 발병 위험이 32배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항바이러스제로 다발성 경화증을 치료하고, 다발성 경화증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EBV 백신 개발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브레이크스루 재단은 밝혔다.
하버드대 화학과의 데이비드 리우(David Liu) 교수는 두 가지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수상했다. 그는 2016년 리우 교수 연구진은 유전질환을 유발하는 돌연변이의 약 30%를 차지하는 한 글자 ‘철자 오류’를 교정하는 염기 편집 기술을 개발했다.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원하는 부분을 자를 수 있는 효소 복합체인데, 류 교수는 DNA를 이루는 염기 하나를 편집하는 유전자 가위를 개발했다.
유전자 편집에 널리 쓰이는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는 DNA 두 가닥을 모두 잘라내기 때문에 잘못된 부위가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리우 교수는 2019년 이를 막을 수 있는 프라임 편집(prime editing) 방법을 개발했다. DNA 한 가닥만 잘라내고 원하는 염기서열을 삽입하는 방식이어서 기존 유전자 가위의 오류가 발생할 문제가 없다. 과학자들은 크리스퍼 캐스9가 유전자 가위이고 염기 하나만 교정하는 방식이 연필이라면 프라임 편집은 워드 프로세서와 같다고 말한다.
올해 물리학 부문 상은 이례적으로 총 1만3508명이 공동 수상했다. 모두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진행된 네 가지 공동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들이다. 이들은 지난 10여 년간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이용해 정밀한 실험을 반복하며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을 검증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패트리샤 맥브라이드(Patricia McBride) CERN 대변인은 “이런 진보는 모든 연구자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기에 공동 연구에 참가한 과학자 모두에게 상을 줬다는 점에서 더욱 영광스럽다”고 전했다. 그는 상금이 전 세계 학생들의 CERN 방문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수학 부문 상은 기하학적 랭글랜즈 추측을 증명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데니스 게이츠고리(Dennis Gaitsgory) 하버드대 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중력과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라는 자연의 힘을 하나의 언어로 기술하려는 물리학의 ‘대통일이론’처럼, 랭글랜즈 프로그램은 대수기하, 조화해석, 정수 등 수학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수학 연구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소의 캐나다 수학자 로버트 랭글랜즈(Robert Langlands) 교수의 이름에서 따왔다. 랭글랜즈 교수는 1967년 당시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수학적 개념 사이의 정확한 연결을 제안했다. 게이츠고리 교수는 지난해 랭글랜즈 프로그램을 지탱하는 기하학적 추측 하나를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브레이크스루 재단은 올해 브레이크스루상 수상자가 받는 상금은 총 1875만달러(약 274억원)로, 지난 14년 동안 수여된 금액은 3억2600만달러(약 4764억원)를 넘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The Breakthrough Prize Foundation(2025), https://breakthroughprize.org/News/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