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에 쓰인 메신저리보핵산(mRNA)이 장에서 염증을 막는 알약으로 변신했다. 동물실험에서 mRNA 치료제가 담긴 캡슐이 위산에 녹지 않고 장까지 도달하는 염증성 장질환(IBD)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하버드 의대 브리검여성병원 연구진은 “리보핵산캡(RNACap)이라는 캡슐에 담긴 mRNA 약물을 실험동물의 장까지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17일 발표했다.
연구를 이끈 웨이 타오(Wei Tao) 교수는 “장까지 무사히 도달하는 방식 자체가 큰 의미”라며 “캡슐 안에 담긴 mRNA가 장 점막 세포와 대식세포에 도달해 직접 항염증 단백질을 생산했다”고 말했다.
mRNA는 유전자 DNA의 정보 일부를 복사해 세포에서 단백질을 합성한다. 이를 이용한 것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다. 주사하면 몸 안에서 mRNA가 코로나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을 만들어 항체를 유도하는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mRNA 코로나 백신은 기존 백신 기술보다 빠른 개발 속도와 높은 효능으로 주목받았고, 이후에도 다양한 질병의 백신·치료제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진이 투여하는 주사제로만 개발돼 환자의 편의성과 의료 접근성에서 한계가 있었다.
브리검여성병원 연구진은 주사제를 먹는 경구용 mRNA 치료제로 바꾸는 연구를 했다. 핵심 과제는 위산에서 mRNA가 유지되고, 장의 목표 부위에 정확하게 전달하며 세포 흡수를 최적화하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치료 단백질을 만들 mRNA를 RNACap 캡슐에 넣었다. 원래 성분은 젤라틴처럼 물에 녹는 물질이지만, 산성 위액에는 녹지 않도록 표면을 특수 코팅했다. 캡슐이 위를 지나 장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이 코팅이 녹고, 장의 수축 운동으로 캡슐이 열려 mRNA 약물이 방출된다. 마지막으로 mRNA가 장세포에 흡수되고 치료 단백질을 생산해 약효를 낸다.
연구진은 캡슐에 ‘인터루킨(IL)-10’이라는 단백질을 합성할 mRNA를 담았다. IL-10은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사이토카인 단백질로, 항염증 효과가 있다. mRNA가 담긴 캡슐을 대장염을 가진 쥐와 돼지에게 투여한 결과, 염증 단백질이 감소하고 장 조직 손상도 완화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특히 돼지 실험에서 RNACap 캡슐이 위에서 분해되지 않고 장에서 빠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투약 8.5시간 만에 장 조직에서 mRNA 발현이 뚜렷하게 관찰됐다. 연구진은 사람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이 염증성 장질환뿐 아니라 다양한 질병 치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경구용 mRNA 치료제 기술로 발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타오 교수는 “mRNA 캡슐의 가장 큰 장점은 알약으로 복용할 수 있고 인체에 손상이 없는 비침습적이라는 점”이라며 “특히 만성 질환자처럼 약을 계속 투여해야 하는 환자에게 큰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mRNA 치료제 개발 기업인 스트랜드 테라퓨틱스(Strand Therapeutics)의 제이컵 베크래프트(Jacob Becraft) 대표는 “경구형 mRNA 치료제는 위장관 치료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평가했다. 존스홉킨스병원의 소화기내과 전문의 조애나 멜리아(Joanna Melia) 박사도 “장에 직접 mRNA를 전달하려는 시도 자체가 매우 고무적”이라며 “이 기술이 다양한 질환 치료에 적용되는 플랫폼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다만 mRNA 알약이 상용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mRNA 약물은 보관이 어렵고 유효 기간이 짧다. mRNA 백신은 섭씨 영하 70도의 초저온 냉동고(콜드 체인)에 보관해야 한다. 브리검여성병원 연구진은 좀 더 안정적인 mRNA 치료제를 개발 중이며, 사람 대상 임상시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먹는 캡슐 기술을 mRNA 치료제를 넘어 백신을 비롯한 다른 약물로 확장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참고 자료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du1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