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 기업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기반 체중 감량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개발해 중동 시장에 진출했다. 업체는 위고비·마운자로 등 기존 비만 치료 주사제와 유사한 체중 감량 효과를 내면서도, 처방전 없이 주사 대신 매일 1포씩 복용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는 ‘질병 치료 효과’가 입증된 성분은 건기식이 아닌 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어, 같은 제품이 출시될 수 없는 상황이다. 업체 주장과 달리 향후 시장 확장에는 제약이 따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케어젠(214370)은 GLP-1 기반 건기식 ‘코글루타이드(Korglutide)’가 레바논에서 정식 등록돼 판매를 시작했다고 14일 밝혔다. GLP-1 유사체 성분이 건기식에 들어가 등록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는 멕시코에서도 오는 10월 건기식 등록을 마치고 11월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멕시코 제약사 IFA셀틱스(IFA Celtix)와 약 4200만달러(한화 58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 주사제는 식후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을 모방한 약물이다. 식욕을 줄이고 포만감을 높여 체중 감소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케어젠은 코글루타이드는 기존 GLP-1 유사체 계열 주사제와 같은 원리이면서, 주사제가 아닌 먹는 제형으로 처방전 없이 일상적으로 복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인도에서 비만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회사가 공개한 중간결과에 따르면, 코글루타이드를 매일 1포씩 12주간 복용한 환자들은 평균 9.46%, 8.15㎏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특히 기존 비만약의 부작용인 근육 손실 없이 지방 위주로 체중이 줄었으며, 평균 혈당 수치를 나타내는 당화혈색소(HbA1c) 수치도 유의미하게 개선됐다고 주장했다. 코글루타이드의 최종 결과는 오는 29일 발표된다. .
업체 설명만 보면 영락없이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같지만, 코글루타이드는 일반 약국이나 마트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건기식으로 등록됐다. 건기식은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건강 기능 개선을 돕는 보조 식품이다.
케어젠은 GLP-1 건기식이 기존 주사제보다 안전성이 높고 부작용이 적다고 주장했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 GLP-1 주사제는 30개 이상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고분자 구조라 부작용 우려가 있지만, 코글루타이드는 단 7개의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져 구조가 단순하고 체내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미국 FDA에 신규식이원료(NDI) 등록을 연내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NDI 승인은 미국 시장에 출시되는 신규 건기식 원료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절차다.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이탈리아 임상시험도 준비 중이며, 인도와 에콰도르에서도 제품 등록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는 일부 국가에서 건기식으로 출시하더라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으로의 확장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는 모두 ‘질병 치료 효과’가 있는 성분에 대해 건기식이 아닌 의약품으로 분류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질병 치료 효과를 내세우는 제품은 의약품으로 간주해, 훨씬 더 엄격한 심사 기준과 임상시험 데이터를 요구한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의약품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거나 질병 예방·치료 효과가 있는 성분은 건기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약이 아닌 건기식으로 출시하는 건 회사의 사업 전략일 수 있다”면서도 “치료 효능이 그만큼 높다면, 왜 다른 제약사들처럼 신약으로 승인 절차를 받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코글루타이드의 과학적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국내 한 GLP-1 계열 비만약 개발 전문가는 “GLP-1 수용체를 제대로 자극하려면 일정 이상의 분자 구조가 필요한데, 아미노산 7개짜리로는 이 기전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며 “GLP-1을 표방하더라도 실제 체내 전달이나 흡수가 확인되지 않으면, 작용 기전 자체가 불분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노보 노디스크, 일라이 릴리, 한미약품(128940), 디앤디파마텍(347850) 등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먹는 비만 치료제는 물론 근육 감소를 비롯한 부작용을 개선한 GLP-1 계열 비만약을 개발 중이다. 현재 먹는 비만약으로는 릴리가 최근 3상을 완료한 오포글리프론이 가장 앞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