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교 인투셀 대표가 지난 4월 온라인 IPO 기업설명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유튜브 캡쳐

에이비엘바이오(298380)인투셀(287840)에서 도입한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기술을 반환하면서 바이오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퍼지고 있다. 인투셀과 기술 도입 계약을 맺은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와이바이오로직스(338840)의 피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 9일 공시를 통해 작년 10월 인투셀로부터 도입한 ADC 플랫폼 ‘넥사테칸(Nexatecan)’ 기술을 반환한다고 밝혔다. 최근 자체 모니터링 과정에서 이 플랫폼 기술과 유사한 구조에 대한 특허가 중국에 공개된 사실이 발견되면서다. 회사 측은 “계약 당시 특허 분석 과정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이후 숨겨진 특허, 이른바 ‘잠수함 특허’를 발견했다”며 “인투셀에 즉각적인 해결을 요구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없어 결국 반환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에이비엘바이오, 인투셀 기술 반환…‘잠수함 특허’ 논란

‘잠수함 특허’는 출원 후 1년 6개월 동안 특허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제도를 활용해 제3자가 해당 특허의 존재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유사 기술에 투자하거나 제품을 개발하게 한 뒤, 이후 등록된 특허를 근거로 침해를 주장하는 방식을 말한다.

에이비엘바이오 관계자는 “넥사테칸 기술 관련 특허가 중국에 공개된 상황에서 우리가 넥사테칸으로 새로운 후보물질을 개발하더라도 특허를 확보할 수 없거나, 관련 특허를 보유한 제3자의 권리 침해로 인한 법적 분쟁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투셀은 ADC 전문 리가켐바이오(141080)사이언스의 공동 창업자인 박태교 대표가 2015년 설립했다. 지난 5월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ADC는 항체에 약물을 붙여 암세포에만 정확히 전달하는 치료 기술이다. 항체와 페이로드(약물), 그리고 이 둘을 이어줄 링커(연결기술)가 핵심 기술이다. 인투셀은 링커 플랫폼 ‘오파스’, 페이로드 플랫폼 ‘PMT’, 그리고 이번 반환 대상이 된 페이로드 플랫폼 ‘넥사테칸’ 등 3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넥사테칸은 아스트라제네카·다이이찌산쿄의 ADC 항암제 ‘엔허투’를 비롯한 기존 ADC 치료제에서 문제가 된 링커 불안정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차세대 페이로드 플랫폼이다. 약물이 체내에서 너무 빨리 떨어져 정상세포를 공격하는 기존 한계를 보완한 기술로, 암세포에 도달한 이후에만 약물이 방출되도록 설계됐다. 이 플랫폼은 인투셀의 링커 플랫폼인 오파스와 결합도 가능하다. 기존 오파스는 특정 구조(페놀)를 가진 약물만 연결할 수 있었지만, 넥사테칸은 더 다양한 구조의 약물까지 안정적으로 붙일 수 있어 활용 범위를 넓혔다.

인투셀이 보유한 링커 플랫폼 ‘오파스’, 페이로드 플랫폼 ‘PMT’, 그리고 이번 반환 대상이 된 페이로드 플랫폼 ‘넥사테칸’ 등 3개 기술 설명./인투셀 IPO 기업설명회 캡쳐

◇삼성바이오·와이바이오 불똥…“잠수함 특허, 감시·대응이 더 중요”

현재까지 인투셀은 총 4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2017년 와이바이오로직스, 2022년 12월 스위스 ADC테라퓨틱스, 2023년 12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난해 에이비엘바이오 등이다.

와이바이오로직스는 전날 홈페이지를 통해 “인투셀의 ADC 플랫폼 계약 해지 건은 와이바이오와 인투셀이 공동 개발 중인 물질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양사가 공동 개발 중인 항-B7-H3 ADC 후보물질 ‘YBL-015’는 와이바이오로직스 항체에 인투셀의 오파스 링커 기술과 듀오카마이신 변형체가 접목된 형태로, 이번에 문제가 된 넥사테칸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YBL-015는 미국에서 이미 특허 등록이 완료됐고, 다른 국가에서도 등록 심사가 진행 중이다.

ADC테라퓨틱스와도 오파스 링커 플랫폼에 한정된 물질이전계약(MTA)을 맺은 만큼, 이번 넥사테칸 반환 이슈의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우려가 큰 곳은 삼성바이오에피스다. 인투셀은 2023년 말 삼성바이오에피스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고, 오파스·PMT·넥사테칸 등 세 가지 플랫폼을 모두 활용해 최대 5개 암종을 타깃하는 ADC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올해 안에 전임상 진입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반환 이슈로 양사의 공동 연구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양사 계약 체결 이후 1년 7개월간 뚜렷한 성과 발표가 없었던 것도 우려를 키운다.

넥사테칸이 포함하는 약물군이 30종에 달하는 만큼, 이번에 문제가 된 화합물과 중복되지 않으면 특허 충돌 가능성이 낮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실제로 에이비엘바이오가 사용한 건 넥사테칸 시리즈 중 ‘NxT3’라는 화합물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선택한 후보가 NxT3와 다르다면 이번 사태와는 무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인투셀이 고의로 문제를 숨겼다기 보다는 중국에 등록된 제3자의 잠수함 특허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본다. 에이비엘바이오가 해당 특허의 공개 사실을 확인했을 당시 아직 심사 단계였다면, 인투셀이 등록을 막아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었겠지만, 만약 이미 등록이 완료된 상태였다면 인투셀 역시 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인투셀 측은 현재까지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김선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인투셀의 공식 입장을 봐야 알겠지만, 기술 도입 시 유사한 사례가 많다”며 “의도적인 은폐는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기술 도입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특허 리스크인 만큼, 에이비엘바이오처럼 지속적인 특허 상황 모니터링과 제3자 특허 등록 취소 요청, 기술 반환 등 신속한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