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 로고를 배경으로 저울에 약병(바이알)이 올려져 있다. /REUTERS/Dado

올해 상반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신약 수는 16개로, 2016년 이래 가장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들이 최근 몇 년간 기존 신약의 처방 확대에 집중하면서 FDA 문을 두드리는 신약 수가 줄었고, FDA의 인력 감축과 심사 기조 변화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됐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3일 ’2025년 상반기 FDA 승인 신약들’ 보고서에서 올해 FDA 승인 신약 수가 전년 상반기와 비교해 25% 줄었고, 최근 5년 상반기 평균(23개)과 비교하면 그 수치가 급감한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미 FDA 승인을 받은 신약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존슨앤드존슨(J&J), 미국 애브비, 스위스 노바티스, 프랑스 사노피 등 빅파마 제품이 주를 이뤘다.

특히 ‘암세포만 잡는 유도미사일’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 신약 2개가 잇달아 허가를 받았다. ADC는 암세포에 결합하는 항체에 약물을 붙여 암세포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치료 기술이다. 1월과 5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유방암 치료제와 미국 애브비의 폐암 치료제가 각각 FDA 승인을 받았다.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의 경구용 비마약성 진통제 저나백스도 지난 1월 말 통증 치료제로 승인됐다. 25년 만에 등장한 비마약성 진통제라 시장의 주목을 받았으나, 가격이 비싼 데다 출시 초반이라 시장 진입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제약·바이오 수석연구위원은 FDA 신약 승인 감소에 대해 “지난 5년간 빅파마들이 개발한 신약들의 허가와 출시가 이어졌고, 현재 빅파마들이 적응증 확장과 라벨 추가 등에 집중하고 있어 신약 출시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 치료제와 다른 원리의 혁신 신약은 개발이 쉽지 않고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FDA의 심사가 까다로워진 영향도 있다. 빅파마들은 대신 시판 중인 신약의 치료 대상(적응증)을 확대하는 전략에 집중했다는 말이다.

최근 FDA 대규모 구조 조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대적인 연방 인력 축소 캠페인의 목적으로 3500명의 FDA직원을 감축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FDA 인력 감축으로 인한 승인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앞서 상반기 승인이 뒤로 밀린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FDA는 줄어든 인력 공백을 인공지능(AI) 시스템으로 대체,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실제 생성형 AI ‘엘사(Elsa)’를 지난달부터 가동했다. 이는 약물의 이상반응 보고서를 요약해 안전성 프로파일 구축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권해순 수석연구위원은 “FDA 신약 승인 건수 감소가 일시적 현상인지, 구조적인 변화일지는 지켜봐야 한다”면서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 매력은 여전하며, 3분기 승인 예정인 신약들과 관련된 기업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FDA가 승인할 것으로 꼽히는 신약 중엔 국내 바이오 기업 알테오젠(196170)의 기술을 적용해 개발 중인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SC가 눈에 띈다. MSD의 블록버스터 항암제 키트루다의 기존 정맥주사(IV) 투여 방식을 피하주사(SC)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정맥주사는 4~5시간 걸리는 반면, 피하주사는 5분 내로 짧은 데다 환자가 집에서 직접 할 수 있다. 이렇게 제형 변경을 통해 신약으로 허가를 받으면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를 연장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