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코스닥에 상장한 제약·바이오 기업 10곳 대부분이 공모가를 웃도는 주가를 기록하면서, 바이오 기업공개(IPO) 시장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협업한 이력이 있는 기업들은 하반기 IPO 유망주로 주목받는다.
2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IPO 시장에서는 빅파마와 협업한 기업들이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 항체-약물접합체(ADC)와 표적 단백질 분해제(TPD)를 융합한 분해제-항체접합체(DAC) 기술 기업인 오름테라퓨틱(475830)은 2023년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에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후보물질을 약 2442억원 규모로 기술 이전했다. ADC가 항체에 약물을 붙여 정확히 암세포에만 전달하는 치료 기술이라면, DAC는 항체에 ‘단백질분해제’ 약물을 붙여 암세포에 전달한다.
오름테라퓨틱은 지난해에는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에 표적 단백질 분해제(TPD) 플랫폼 기술을 이전했다. 리가켐바이오(141080)사이언스 공동 창업자인 박태교 대표가 이끄는 인투셀(287840)은 삼성바이오에피스와 ADC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하반기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 중 다수도 빅파마 협업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 개발사 알지노믹스가 대표적이다. 2017년 설립된 알지노믹스의 핵심 기술은 리보핵산(RNA)을 편집하는 ‘트랜스-스플라이싱 리보자임’이다.
RNA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유전자 정보를 복사해 모든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알지노믹스는 엉뚱한 단백질을 만들어 병을 유발하는 RNA를 골라 제거한 뒤, 그 자리에 치료에 도움이 되는 RNA를 끼워 넣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회사는 지난 5월 미국 일라이 릴리에 이 기술을 1조9000억원 규모로 수출했다. 유전성 난청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는 기술이전 계약으로 알지노믹스가 초기 연구개발(R&D)을, 이후 후속 임상과 제품화는 릴리가 맡는다. 알지노믹스는 6월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를 통과해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다.
ADC 신약 개발 기업인 에임드바이오 역시 지난달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를 통과해 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회사는 개발 중인 뇌종양 치료제 후보물질 ‘AMB302’을 미국 바이오헤이븐에 이전하는 계약을 맺었다. 에임드바이오와 중국 진퀀텀은 이 물질을 섬유아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3(FGFR3)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악성뇌종양과 방광암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두 회사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과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국내에서도 여러 회사들이 투자했다는 점에서 계약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028260),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공동 출자해 만든 ‘삼성라이프사이언스 펀드’와 유한양행(000100)도 에임드바이오에 투자했다.
지투지바이오는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이 회사도 지난 1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펩타이드 기반 주사제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지투지바이오는 약효 지속성 약물전달 기술인 ‘이노램프(InnoLAMP)’를 갖고 있다. 초고함량 약물을 안정적으로 전달해 생체이용률을 높이는 기술로, 비만 치료제의 약효 지속 기간을 늘릴 수도 있다고 주목받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뇌 영상 분석 기업 뉴로핏은 일라이 릴리와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을 위한 데이터 공유 계약을 맺었다. 릴리의 다기관·다인종 데이터를 활용해 뇌영상 분석, 임상 변수와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최근 릴리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키썬라(성분명 도나네맙)’의 부작용 모니터링 필요성이 커진 만큼, 뉴로핏의 뇌 영상 판독 플랫폼이 도움이 될 전망이다.
키썬라는 고분자 물질로 뇌 방어막인 혈뇌장벽을 잘 뚫지 못한다. 약물 농도를 높여서 어느 정도 뇌로 침투해 뇌혈관 주변에 쌓인 이상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 응집체를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혈관 벽을 손상해 출혈이나 부종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하는 문제가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 20~30%에서 나타났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IPO는 단순한 반등이 아니라,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다시 주목받는 신호”라며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이전, M&A(인수합병)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인 만큼 얼어붙었던 투자 심리가 다소 회복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