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바이오 박람회인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 USA)'이 16일(현지 시각) 개막했다. 바이오 USA가 열린 '보스턴 컨벤션&엑시비션 센터' 안. /보스턴=허지윤 기자

세계 최대 바이오 박람회인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이 16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열렸다. 행사장인 보스턴 컨벤션&엑시비션 센터 일대는 이날 아침부터 세계 각국에서 온 참관객들로 북적댔다. 행사를 주관하는 미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바이오 USA에는 세계 90여 국에서 9000여 기업에서 2만명 이상이 참석한다. 협회 측이 집계한 기업간 면담 회의만 6만 건 이상이다.

개막 첫 날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한국은 올해 80여 기업이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일본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특히 올해는 중국 기업들의 달라진 기류가 감지됐다. 작년에는 미·중 갈등 속에 중국 기업들이 대거 불참했지만, 올해는 전시 부스가 없어도 중국 기업인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세계 최대 바이오 박람회인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이 16일(현지 시각) 개막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이 전시관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보스턴=허지윤 기자

◇존재감 커진 한국, 역대 최대 규모 참가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셀트리온(068270), SK바이오팜(326030), 롯데바이오로직스,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그룹 등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전시 부스는 미국과 유럽의 대형 업체들보다 규모가 크고 홍보 프로그램도 다채로웠다.

한국바이오협회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함께 운영하는 한국관은 역대 최대 규모인 560㎡(169평)로 조성돼 51개 기업이 참여한다. 그 외 부스 없이 발표 세션에 참가하는 업체까지 합하면 참가 기업 수도 80여 곳으로 역대 최대 규모이다. 세계 바이오 시장에 뛰어든 한국 기업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행사에 13년 연속 단독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전시장 초입에 발광다이오드(LED) 벽을 설치한 167㎡ 규모 부스를 마련했다. 회사는 위탁개발생산(CDMO) 경쟁력과 올해 새롭게 출시한 항체·약물접합체(ADC) 서비스, 인공지능(AI) 기반 운영 시스템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제임스 최 삼성바이오로직스 영업지원담당 부사장은 이날 부스를 소개하며 “글로벌 기업과의 미팅에 최적화되도록 구성했다”며 “인터랙티브(interactive, 양방향 소통) 화면을 통해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이번에 해외 기업과 잡은 면담만 약 100건이라고 했다.

제임스 최 삼성바이오로직스 영업지원담당 부사장은 16일(현지 시각) 삼성바이오로직스 전시 부스를 찾은 참관객들을 직접 맞이하며 부스 구역별 특징을 소개했다. /보스턴=허지윤 기자.

이번 행사에서 처음으로 단독 부스를 운영하는 SK바이오팜도 대형 스크린을 걸고 회사 브랜드와 뇌전증 치료 신약 ‘세노바메이트’ 홍보에 열을 올렸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세노바메이트를 사용한 환자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상과 미국 전역에서 진행 중인 광고 영상 등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3시 SK바이오팜에 관한 퀴즈 풀이와 경품 추첨 행사가 진행되자 부스 앞에 많은 참관객이 모여 들었다. SK바이오팜은 예정된 기업 간 면담 약속만 200여건이라고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은 “바이오USA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협력 기회를 도모하고, 세계 시장에서 SK바이오팜의 위상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16일(현지 시각) 바이오USA SK바이오팜 부스 앞. 올해 처음으로 단독 전시 부스를 설치했다./보스턴=허지윤 기자

◇중국 바이오 업계, 정치와 분리 움직임

중국 최대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인 우시바이오로직스는 부스를 차리지 않았다. 미국이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을 추진하면서 우시바이오로직스를 대상으로 적시하자 회사는 지난해 바이오USA 불참을 결정했다.

같은 불참이지만 작년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작년 행사에선 미중 갈등 여파로 중국 바이오 기업들의 글로벌 사업 퇴출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컸다. 반면 올해는 ‘중국 기업들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실제 미국이 추진하던 생물보안법은 지난해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전문 로비 기관을 통해 적극적인 대응을 했다고 알려졌다. 작년엔 중국 기업을 찾아 보기 힘들었지만, 올해는 중국과 홍콩 기업들이 부스를 차렸다. 국내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이날 “우시바이오로직스도 부스만 없지 올해 행사에서 적극적으로 파트너링 미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USA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은 이미 바이오 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가졌고, 글로벌 벨류체인(의약품 개발부터 생산, 공급까지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게 쉽지 않아 정치와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중국 기업이나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정치 갈등과 사업을 분리하려는 움직임도 잇따랐다. 중국 항암제 개발 기업인 베이진은 지난 5월 비원메디슨(BeOne Medicines)으로 사명을 바꾸고 법인 등록지를 스위스로 바꿨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 바이오 기업을 신약 개발 파트너로 택하는 사례는 올해도 이어졌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겨냥하는 생물보안법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중국 바이오 기업의 사업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16일(현지 시각) 바이오USA 행사장 안 꾸려진 중국기업 부스 전경. /보스턴=허지윤 기자

◇대규모 M&A, 인프라 투자 늘리는 일본

일본은 대규모 투자를 내세워 해외 기업들을 공략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일본 후지필름 그룹은 경쟁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보다 큰 부스를 세웠다. 후지필름은 그룹과 후지필름 CDMO 자회사인 후지필름다이오신스의 부스를 연결해 하나로 운영했다.

후지필름은 2017년 와코준야쿠공업을 인수합병(M&A)해 배지(미생물 배양액) 사업에 진출했다. 이듬해에는 미국 얼바인사이언티픽을 8억달러(1조895억원)에 인수하고, 2021년엔 네덜란드에 배지 생산 공장을 세웠다.

회사는 2023년 6월 덴마크 힐러드 공장에서 최고운영자(COO)를 지낸 라스 피터센을 최고경영자(CEO) 대표로 선임한 이후 미국에만 32억달러(약 4조3580억원)를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장 확장과 연구개발(R&D) 센터 설립에도 나섰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키타가와 수구루 후지필름 인터내셔널 판매 담당자는 “후지필름은 카메라로 유명하지만, 이제는 제약·바이오 분야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물보안법에 따른 중국 바이오의 위기가 후지필름의 사업 확장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한국 기업도 우리의 큰 고객 중 하나”라고 했다.

16일(현지 시각) 바이오USA 행사장 내 후지필름 전시 부스 앞. /보스턴=허지윤 기자

다른 일본 기업들도 바이오 분야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교류협력본부장은 “일본 글로벌 유리제조기업인 아사히글라스(AGC) 그룹의 바이오 의약품 CDMO 전문 자회사 AGC 바이오로직스가 미국, 유럽의 제조시설을 인수하는 M&A를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일본에 이어 이외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바이오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일본, 중국뿐 아니라 인도, 태국 등도 바이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한국 바이오 산업이 경쟁력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3년에서 길어야 5년”이라며 “그 전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더 많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며 성과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

행사 둘째 날인 17일에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특별 게스트로 참석한다. 현장에서는 미국 정부의 바이오산업 정책, 바이오 분야를 둘러싼 미·중 갈등 등 사안이 논의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이 16일(현지 시각) 바이오USA 현장 내에 구성된 한국관을 소개하고 있다. /보스턴=허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