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면서 국내 건설업계도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운송량의 20~30%가 지나는 곳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포르도 등 3곳의 이란 핵시설을 공습하면서 이란 국회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결의한 상태다. 실제 봉쇄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결정이 있어야 실행된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중동 각국에서 생산되는 원유 수출에 차질이 생겨 국제 원유가격이 급등하고 이 영향으로 다른 원자잿값도 오를 수 있다. 또 국내 건설사 해외 수주의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중동 지역 정세의 불안으로 현지 사업들의 진행이 더뎌지거나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2025년 6월 22일 이란 포르도 지하 핵 시설을 미국이 공격한 후 위성사진 / 연합뉴스, 로이터

23일 건설업계와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건설사의 중동 지역 수주 규모는 56억4174만2000달러(약 7조7895억원)다. 이는 전체 해외 수주(116억2247만6000달러·16조500억원)의 48.5%다. 해외 수주의 절반 가까운 규모가 중동에 몰려있는 셈이다.

주요 건설사별 중동 사업 현황을 보면 현대건설은 이란과 페르시아만을 마주 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의 사우디전력청(SEC)이 발주한 ‘태양광발전 연계 380㎸ 송전선로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우디 메디나와 제다 지역에 각각 건설하는 송전선로 사업으로, 총 공사금액은 3억8900만달러(약 5125억원) 규모며 지난 1월 착공했다. 2027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라크에서는 한화건설이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한화건설이 진행하고 있는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동남쪽 10㎞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에 10만80가구의 주택과 사회기반시설 등 신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현재 3만여 가구의 공사가 끝났으며 7만 가구에 대한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이라크 정부 국무회의(Council of Ministers)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또 아랍에미리트(UAE)에선 삼성물산과 현지 건설사 트로잔 제너럴 컨트랙팅(Trojan General Contracting) 컨소시엄이 아부다비 인근 알다프라 지역에 1000㎿(메가와트) 규모 가스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건설업계에선 이란과 미국의 극한 대립이 국내외 건설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줄지 긴장하고 있다. 국제유가와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 급등(원화 가치 하락) 등 이미 현실로 나타난 위험 이외에도 일각에서는 중동 현지에서 진행 중인 건설 사업이 잠정 중단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 들어오는 대부분 원유가 중동에서 거래되는 두바이유인데 이게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영향으로 수출이 어려워지면 유가 급등 등으로 건설뿐 아니라 국내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성욱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국내에 들어오는 원유의 70~80%는 두바이유”라며 “원유값 상승이 산업에 미칠 영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김형미 해외건설협회 아중동-유럽실장은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실제 이뤄지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물류 이동이 힘들어져 중동 각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사가 중단되는 상황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아직 이란 인접국에 대한 영향이 크지 않은 상황이지만 현지 직원들의 안전 문제, 중동 지역 공사를 위해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원유를 포함한 원자잿값 상승 등을 모두 모니터링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아직 이란 인접 국가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이란 사태가 어디까지 확산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런던ICE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22일 오후 전 거래일보다 5% 넘는 배럴당 81.4달러까지 올랐고, 현재는 78.46달러를 기록 중이다. 뉴욕상업거래소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전 거래일보다 4% 넘게 올라 배럴당 78.4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75.3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42%(5.8원) 오른 달러당 1382.3원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