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건설현장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1조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선진화 마중물 앵커 부동산투자회사(리츠)를 조성해 PF 사업 초기 단계부터 지원한다. PF 시장 경색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사업의 토지 매입 비용을 저리로 빌려주는 것이다. 정부가 개발 사업의 브릿지론 단계를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정부의 지원에 개발업계는 “사업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본PF 단계로 넘어간다는 보장이 없는 민간 개발 사업에 국비가 투입되며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추가경정예산에 PF 선진화 마중물 개발앵커 리츠 조성에 3000억원을 배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리츠는 1조원 규모로 조성된다. 정부가 국비 3000억원을 출자하고 운용사·기관투자를 통해 1000억원, 회사채 발행으로 6000억원을 발행하는 구조다.

마중물 앵커 리츠는 우수한 주택 개발 사업장을 선정해 토지 매입 단계에서 총 사업비의 10~20%를 투자하게 된다. 기존에는 사업자가 연 10%가 넘는 금리로 브릿지론을 실행해야 했지만, 이 앵커 리츠로부터 돈을 투자 받으면 연 5~6% 금리를 적용 받는다. 브릿지론은 개발사업 초기 시행사가 토지 매입 비용이나 기타 인허가 관련 자금을 단기로 융통하는 대출이다.

이 리츠의 사업장 1개당 투자 규모는 500억~1000억원으로, 총 1조원이다. 지난해 브릿지론 신규 취급액이 약 10조원이다. 전체 브릿지론의 약 10%의 수준의 지원이 이뤄지는 셈이다. 정부는 개발 사업이 본PF 단계로 넘어가면 투자금을 회수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택 개발에서 가장 초기 단계인 브릿지론에서 우수한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PF 시장이 경색돼 진도를 못 나가는 사업들을 지원해 주는 것”이라며 “정부의 지원이 있으면 사업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나머지 차입도 더 쉽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 전경. /뉴스1

이러한 지원은 주택 공급 확대와 분양가 안정 등을 위해서다. 토지 매입 단계에서 금융비용을 절감하면 사업비가 내려갈 수 있다. 또 사업의 안정성이 확보되면서 진행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금리를 연 5%포인트만 아끼더라도 50억원 이상은 아낄 수 있다”며 “브릿지론 단계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 본PF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택 공급도 빨리 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개발업계도 브릿지론 단계의 지원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금융권의 PF 관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자금을 조달하더라도 10%대 후반의 금리가 적용되기도 해 이번 정부의 지원 방안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 앵커 리츠의 규모가 1조원인 만큼 PF 사업 전반의 온기를 돌게 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최소 500억원을 지원받는다고 가정할 때 대상이 되는 사업장은 20개에 불과하다.

사업성에 따라 대출 여부를 시장에서 결정해야 하는 민간 개발 사업에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 자기자본 없이 정부 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해 성공할 경우 사업자는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반면 국비가 투입된 사업장이 본PF로 넘어가지 못할 경우 민간 사업자가 떠안아야 할 사업 리스크를 정부가 분담하게 돼 사업자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비해 국비가 투입되는 사업장을 경제력 파급력, 공공성(임대주택), 안정성 등을 종합 고려해 선별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자기자본을 일정 수준 확보한 사업자를 위주로 선정해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기자본이) 없는 곳에 주게 되면 예산의 손실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자기자본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모럴해저드를 방저하기 위해 디벨로퍼들의 자기자본 확보 수준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국토부는 브릿지론 단계 이후 중소건설사에 PF 특별 보증도 제공할 방침이다. 시공순위 100위 밖 건설사와 제2금융권에 특화된 전용 PF 대출보증 상품을 신설한다. 2000억원의 주택기금을 투입해 2027년까지 2조원 규모의 보증을 제공한다. 중소 건설사를 지원하는 취지의 상품인 만큼 시공사 평가비중은 축소한다. 대신 사업성 평가 비중을 확대해 우량 사업장에 선별 지원을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