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동산신탁사들의 부채비율이 10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비율은 부채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로 기업 건전성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다. 부채비율이 100%라는 의미는 자기자본과 같은 금액의 부채가 있다는 뜻이다. 시공사(건설사)가 정해진 시기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신탁사 자금으로 공사를 마무리해 주는 ‘책임준공형 신탁’ 등이 신탁사 부실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가산디지털단지의 한 지식산업센터 1층 사무실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채민석 기자

8일 나이스신용평가가 한국토지신탁, 한국자산신탁, 하나자산신탁, 교보자산신탁 등 13개 부동산신탁사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부동산신탁사의 지난해 평균 부채비율은 97.4%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56.3%보다 41.1%포인트(p) 상승한 수치다.

신탁사별로 보면 무궁화신탁이 전년 80.9%에서 168.1%로 부채비율이 가장 높았다. 무궁화신탁은 재무건전성 악화로 지난해 금융위원회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다. 또 한국투자부동산신탁이 전년 47.7%에서 167.6%로 부채비율이 1년 동안 3.5배 높아졌다. 신한자산신탁도 전년 22.6%에서 155.2%로 7배 가까이 부채비율이 뛰었고, 대신자산신탁(48.6%→149%), 대한토지신탁(95.7%→140.4%) 등도 부채비율이 상승했다. KB부동산신탁은 전년보다 부채비율이 낮아졌지만 지난해 말 기준 129.3%의 부채비율을 기록했다. 신용등급이 있는 13곳의 부동산신탁사 중 부채비율이 100%를 넘는 곳은 6곳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탁사들이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시공하는 지방의 책임준공형 사업장을 많이 관리하게 됐는데 대규모 미분양과 자금경색이 발생하면서 책임준공 의무를 지키기 위해 자체 자금이나 외부 차입 자금으로 공사를 떠안은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지식산업센터, 생활형 숙박시설, 오피스텔 등 지방의 비(非) 아파트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런 부실이 확산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책임준공은 건설사가 정해진 기간에 공사를 끝내기로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시행사가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을 모두 떠안는 구조다. 보통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하지만 신용도가 낮은 중소‧중견 건설사는 신탁사를 이용해 신용도를 보강한다. 시공사가 대출을 떠안지 못하면 신탁사가 이를 책임져주겠다고 약속하며 공사를 수주한다.

그래픽=정서희

KB부동산신탁은 부산 해운대 우동 오피스텔 개발사업, 신한자산신탁은 세종 어진동 숙박시설과 경남 창원 산호동 오피스텔 개발사업, 우리자산신탁은 경기 시흥 정왕동의 근린생활시설 신축 사업과 충남 아산 탕정의 지식산업센터 개발사업 등이 부실화됐다.

부동산신탁사의 차입금의존도도 전년 19.5%에서 34.0%로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차입금의존도는 기업의 총자산에 대한 외부에서 조달한 차입금의 비율을 말한다. 또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고정이하자산비율도 전년 45.0%에서 55.3%까지 높아졌다. 고정이하자산 비율이 50%를 넘었다는 것은 신탁사가 보유한 자산의 절반 이상은 부실채권이라는 의미다.

김성진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2실장은 “공사비와 사업비 상승, 미분양 확산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지방 중소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부도가 많이 발생했고 책임준공 의무를 신탁사들이 부담하면서 신탁사들의 재무건전성이 많이 악화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책임준공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겪고 있는 신탁사들도 많아 신탁사의 재무 상황이 개선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