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엔지니어링이 해외 사업장에서 높아진 원가를 일시에 반영하는 ‘빅 배스’(Big Bath, 경영진 교체 시기에 진행하는 잠재 부실 처리)를 하면서 모회사인 현대건설에 지난해 연결 기준 1조2209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3년간 해외건설 수주실적에서 국내 건설사 상위 3위에 오를 정도로 해외 수주에 적극적이었다. 지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건설 수주실적 순위를 살펴보면 삼성E&A(17.9%), 삼성물산(17.2%), 현대엔지니어링(15.6%), 현대건설(9.2%), GS건설(4.8%) 순이었다.
수주 실적은 양호했지만, 부실은 매년 쌓이고 있었다. 연도별로 현대엔지니어링이 아직 공사비를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미청구공사채권’과 공사비는 청구했지만 발주처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한 ‘공사미수금’(매출채권) 추이를 보면 부실이 심화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2018년 미청구공사채권과 공사미수금은 연결 기준 5430억원, 8786억원이다. 2019년에는 미청구공사채권과 공사미수금을 각각 3809억, 8664억원으로 줄였고 2020년에도 4301억, 7062억원으로 양호한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 전에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해외 현장들에서 건설 원가 상승, 물류비 급등, 납기 지연 등이 발생하자 공사비 증액을 두고 발주처와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2021년 미청구공사채권과 공사미수금이 9890억, 8005억원으로 늘어난 뒤 2022년부터는 모두 1조원을 넘어섰다. 미청구공사액은 2023년 1조4561억원에서 지난해 9월 말 2조2307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공사미수금은 1조8291억원에서 1조6235억원으로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1조원 후반대였다.
결국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연말 대표적인 골칫덩이인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업장 두 곳에 대한 원가 비용을 일시에 회계 장부에 반영해 손실을 털어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 2018년 시공 지분 70.3%로 수주한 3조9508억원 규모 ‘인도네시아 RDMP 발릭파판 정유공장’ 프로젝트는 올해 9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기준 89%의 공정률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청구공사채권 1190억3100만원과 공사미수금 1억4900만원이 남아 있다.
또 현대엔지니어링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현대건설과 함께 수주했던 1조6442억원 규모 ‘사우디 자푸라 프로젝트 패키지2’에서도 대규모 비용을 지난해 회계 장부에 반영했다.
지난해 9월 기준 사우디 자푸라 프로젝트 패키지2의 경우 75%의 공정률을 달성했는데도 590억2300만원의 미청구공사채권과 31억4200만원의 공사미수금을 현대엔지니어링이 들고 있었다. 이 사업은 지난 2021년 수주해 올해 8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플랜트 프로젝트로 기자재를 먼저 사들여야 하기 때문에 원가 투입 비용이 많았다. 결국 미청구공사와 공사미수금을 비롯해 기자재를 사들이는 데 썼던 비용 등을 합쳐 총 1조2200억원을 손실로 처리한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플랜트사업의 경우 다른 공사와 달리 자재를 선발주해야 하는데 구축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가 이뤄지기 전에 건설사가 원가를 많이 투입해야 하는 구조”라면서도 “공정이 진행되면서 발주처로부터 공사비를 받으면 수익으로 다시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과거에 수주한 해외 프로젝트 준공이 올해 대기 중인 만큼 수익성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허재준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3분기에 이어 해외 현장 관련 발주처와 클레임 타결 지연이 지속되면서 해외 현장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며 “올해 상반기에도 마진이 안 좋은 프로젝트 준공이 예정된 만큼 당분간 해외 현장 수익성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건설의 지난해 연결 기준 잠정 실적을 보면 1조2209억원의 영업손실과 736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32조6944억원으로 전년 보다 10.3% 늘었지만, 1조원대 영업손실로 적자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