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수백 채를 ‘깡통전세’ 수법으로 사들였다 사망한 ‘빌라왕’의 주 무대로 알려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빌라 매물들이 대거 경매시장으로 쏟아지고 있다. 많게는 16회 유찰돼 최저가격이 500만원에 못 미치는 물건도 등장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항력 있는 임차인의 경우 전세보증금을 승계해야 하는 만큼 투자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9일 이른바 '빌라왕' 사건의 주 무대가 된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빌라 밀집 지역 모습. /뉴스1

13일 신한옥션SA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강서구 다세대(빌라) 경매 물건 210건 중 170건(80%)이 화곡동 소재 빌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날 기준 나와 있는 서울 지역 빌라 경매 물건은 총 714건으로 이 가운데 화곡동 빌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24%다. 서울에서 나오는 빌라 경매 4건 중 1건은 화곡동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낙찰 상황은 좋지 않다. 화곡동 빌라 물건 170건 중 6건을 제외한 나머지 물건 모두 1회 이상 유찰됐다. 최대 16회 유찰된 물건도 있었다. 대항력이 있는 임차인에 가등기가 설정돼있는 이 물건의 16회차 최저가는 최초 감정가 1억7500만원의 2.8% 수준인 492만6000만원이다.

화곡동 빌라가 경매시장에 쏟아지는 이유는 이른바 ‘깡통 전세’를 양산한 빌라왕들의 주무대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자본·갭투자 수법으로 수많은 빌라를 사들인 후,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화곡동은 인근에 김포공항이 있어 고도제한과 소음 문제로 재건축·재개발이 쉽지 않아 신축 빌라가 계속 생겨나는 지역이다. 강남과 멀어 매매가가 싸고, 신축인 만큼 임차인 모집이 쉬워 빌라왕들의 투기 무대가 됐다.

실제 깡통전세로 인한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도 화곡동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파악한 상위 30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집중 관리 다주택 채무자(악성 임대인)의 지역별 통계를 보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발생한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737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서울 전 지역 사고의 41%를 차지한다.

물건이 계속 유찰되는 이유는 대개 보증금이 최초 감정가보다는 낮지만 시세보다 높기 때문이다. 매매 시세가 떨어지면서 경매로 낙찰받는 게 메리트가 없는 셈이다. 만약 끝까지 낙찰이 되지 않으면 사기 피해를 본 임차인 본인이 직접 낙찰을 받아 보증금으로 해당 빌라를 사는 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반환보험에 가입했다면 대위변제를 통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다. 대위변제는 보증기관에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먼저 돌려준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이를 회수하는 제도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경매 물건이 깡통전세나 전세사기와 관련됐다면 HUG에서 대항력을 포기한다는 서류를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임차인의 보증금을 낙찰자에게 청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면서 “매각 물건 명세서에 대항력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서류가 기재돼있는 것을 확인한 뒤 낙찰에 응할 수 있다”고 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지금 같은 하락장에 유찰 물건이 많은 만큼 저가로 경매 투자를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있는 경우 전세보증금을 승계해야 하므로 보증금과 낙찰가를 합친 금액을 투자금액으로 보아야 하는 만큼 화곡동 빌라 투자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