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작년 8월 건축법을 개정하고 집합건물 재건축 허가 요건을 완화하면서 상가를 재건축해 새로운 건물을 짓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단지내 상가를 비롯해 소유주가 3000명이 넘는 복합상가까지 그 면면이 다양하다.

1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잠원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구 대림아파트) 상가는 조합원 총회를 열고 한일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지난 1월 25일 건축허가를 받은 후 두 달만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동의서를 100% 징구했고 시공사 선정까지 마쳐 하반기 쯤 이주를 시작할 것으로 보고있다”면서 “이르면 내년 초 철거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래미안팰리스 상가 모습/네이버거리뷰

이 상가는 1979년에 지어진 대림아파트 단지내 상가로, 구분소유자는 총 116명이다. 아파트의 경우 2016년 래미안 신반포팰리스로 재건축이 끝난 반면 상가는 재건축이 뒤늦게 추진됐다. 사업 추진 당시 상가 소유주들과 아파트 조합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재건축을 따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사업을 처음 추진할 당시 이 상가는 추진위원회 측의 전문성 부족과 소유주 간 의견차이로 사업이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020년 5월 조합 창립총회를 열면서 속도가 붙었다. 동의서 징구를 시작한 후에는 작년 8월 정부가 집합건물의 재건축 허가에 필요한 동의율 기준을 100%에서 80%로 낮추면서 제도변화의 수혜도 입었다.

예전에는 집합건물이 재건축 허가를 받으려면 해당 건물의 구분소유권자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집합건물법)에 따르면 구분소유자의 80%가 찬성하면 ‘재건축 결의’(건물을 철거해 새 건물의 대지로 이용할 것)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건축법이 적용되는 건축허가 단계에서는 100%의 동의가 필요해 사실상 모든 소유주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로 인해 속칭 ‘알박기’ 문제가 빈번이 발생했다. 2020년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중구의 한 상가는 전체 면적의 0.11%를 가진 한 명이 재건축을 반대하면서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소유권을 사가라고 요구하기도했다. 당시 감사원은 서울시 기관운영감사 과정에서 관련 규정 문제점을 확인한 뒤 국토부에 통보했고, 이를 계기로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이후 상황이 바뀌면서 신반포팰리스 상가처럼 재건축에 속도가 붙는 사례가 나왔다.

최근에는 소유주가 많은 쇼핑몰(복합상가)에서도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추진되는 굿모닝시티 재건축 사업과 수원시 광교신도시에서 진행중인 북수원패션아울렛이 그 사례다. 두 곳 모두 건축법 개정 이후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소유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구분소유자 3200여명이 소유권을 나눠가진 굿모닝시티의 경우 현재 소유주 70%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재건축 결의 요건인 80%를 충족하면 추후 건축심의 등 절차에 나설 계획이라는 게 시행사 측의 설명이다. 이 상가는 2008년 개관 당시 서울의 대표상권으로 손님이 몰렸지만, 2016년 사드배치 이후 발길이 뚝 끊겼다. 이에 작년부터 오피스텔로 바꾸기 위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중구 장충단로 247 굿모닝시티 전경/네이버 거리뷰

소유주 184명으로 구성된 북수원패션아울렛도 오피스텔로 재건축을 추진한다. 현재 소유주 72%의 동의를 받았고, 동의율을 더 올려 건축심의에 나설 계획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7월쯤 건축허가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수원시와도 어느정도 협의를 진행한 상황”이라고 했다.

집합건물법에 따른 재건축은 동의서를 징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동의서 징구를 완료하고 재건축 결의와 건축허가까지 받으면 추후의 절차는 많지 않은 특징이 있다. 건축허가 후 미동의자의 지분을 사들여 소유권 100%를 확보하면 관리처분인가·이주 및 철거 등 나머지 절차가 진행된다. 도정법에 따른 재건축에서 관리처분인가를 받기까지 안전진단과 조합설립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건축법 개정을 계기로 노후화된 상가를 재건축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동의율 조건이 사업을 막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을 것”이라면서 “제도 개선으로 상가 소유자들은 재건축을 통해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할 수 있고, 주거용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 형태로 탈바꿈되는 경우에는 인근의 주택공급까지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나오는 임대료나 운영수익이 줄었기 때문에 이를 오피스텔 등으로 재건축하면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다만 세입자들에 대한 적절한 이주대책이 마련돼야한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상가임차인은 최장 10년의 계약기간이 보장되지만, 상가 재건축이 추진될 경우 임대인은 계약갱신을 거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집합건물법에 따라 재건축을 추진하면 임차인들이 임대차보호법 적용 기간인 10년을 다 못채우고 나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임차인들의 영업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주에 따른 불편도 겪게 되므로, 문제없이 이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