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정비사업지에서 학교 대신 아파트를 짓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학생수가 줄어든 탓에 교육청에서 학교설립계획을 축소하고 있어서다. 일부 단지에서는 추가로 짓는 물량이 100가구를 넘어서기도 한다.
19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입주를 시작한 평촌자이아이파크 아파트는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추가 공급물량 125가구(특별공급 28가구 제외)를 대상으로 청약을 진행했다. 청약에는 2166명이 몰리면서 평균 17.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중 25가구(전용 39㎡)는 기존에 지어진 아파트에 대한 후분양, 100가구(전용 84㎡)는 아파트 한 동을 새로 지어 공급하는 선분양 물량이다.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515-2번지 일대에 들어서는 이 단지는 임곡3구역을 재개발해 짓는 아파트다. 당초 21개동·2637가구 규모로 구성됐으며, 2018년 12월 일반분양을 마치고 지난달 말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안양시청에 따르면 분양을 앞둔 2018년 11월 안양교육지원청은 단지내 학교설립계획을 취소하고 인근 학교에 새로 입주하는 가구의 학생들을 수용하기로 했다. 조합은 학교용지였던 곳에 아파트를 추가로 지을 수 있게 됐다. 당초 학교 용지를 기부채납 받을 예정이었던 만큼, 전체 용지 중 일부에는 국공립유치원을 넣는다.
이번에 분양한 추가 물량은 오는 2023년 8월 입주할 예정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아파트 규모는 22개동·2737가구로 커진다. 추가로 짓는 100가구(전용 84㎡)의 분양가는 9억520만~9억2360만원선으로, 2018년 분양 당시 분양가(최고 6억7982만원)에 비해 2억원 넘게 올랐다.
동안구의 신축 아파트인 ‘평촌 어바인퍼스트’도 같은 이유로 5개동(304가구)을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이곳은 학교용지 전체에 아파트가 들어선다. 1월 말까지 착공에 들어가고 올해 상반기 중 분양할 계획이다. 다만 추가로 지어지는 물량 중 3%는 임대아파트로 공급해야해 구체적인 분양 물량은 확정되지 않았다.
학교용지에 새로운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서는 이유는 교육청에서 학교설립계획을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양시청 관계자는 “예전에 재개발 사업을 추진할 당시 입주하는 가구가 1000가구를 넘어설 경우 학교를 지으라는 의견을 줬는데, 최근에는 신설계획을 취소하고 기존에 있는 학교를 증·개축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수도권 내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는 정비사업도 학교 설립계획을 축소하거나 인근 학교를 증·개축해 학생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고양시에서는 지난 2016년 고양시 일산3구역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던 중, 중학교를 짓기 위해 마련해뒀던 학교용지를 없애고 아파트를 지은 바 있다. 성남시의 경우 판교 대장지구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더 짓지 않았고, 이후 진행되는 개발사업은 기존 학교를 증·개축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학교용지가 취소되고 개발이 가능해지면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분담금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안구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새로 짓는 아파트는 건축비를 빼면 이익으로 환수되니까 조합원들은 손해를 볼 것이 없다”면서 “추가분양 물량은 이미 지어진 아파트와 비교해 분양가도 높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더욱 좋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주변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가 새로 지어지지 않으면 기존 학교를 증·개축해서 새로 유입된 학생들을 수용해야 하는데, 이 경우 유동인구가 늘면서 교통과 교육환경이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인근 주민들도 문화·편의시설 등 기존에 갖춰져있던 인프라를 새롭게 입주하는 가구들과 공유해야 하므로 주거환경이 악화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학교용지의 용도전환을 반대하는 주민과 사업자 간에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전 용산지구의 경우, 택지개발업체는 2023년 4월 입주예정인 3500가구 규모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학교와 유치원 용지를 확보했으나, 교육청이 예상 학생 수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대전시와 협의를 거쳐 초등학교 용지를 반납한 바 있다. 그러나 분양 과정에서 예상보다 학생 수가 많아지면서 인근 주민들은 원안대로 학교를 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학교용지가 방치된 상태로 남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4년 의정부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손잡고 서울 상계동 및 의정부시 장암동 일대를 개발한 장암지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구 내 조성된 수락산리버파크 1,2단지 아파트는 2009년 입주를 마쳤고 2016년에는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의정부교육지원청이 학교설립계획을 취소한 후 활용 용도를 두고 주민들과 SH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9000㎡ 규모의 학교용지가 아직까지 방치된 상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학교용도를 전환해 주택으로 사용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학교를 품고 있는 단지에 비해 교육 인프라가 열악해질 수 있다”면서 “이는 단지의 미래가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사업시행자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 선택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