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 이어 더불어민주당도 경영진의 형사처벌 리스크를 완화하는 ‘배임죄 완화법’을 발의했다. 의원 개인 차원의 발의지만,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현행 배임죄의 과잉 처벌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하면서, 동시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려는 여권의 ‘투트랙 전략’이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르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여야 합의로 처리될 전망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자치분권균형발전전국회의·국정기획위원회 국가균형성장특별위원회·지방시대위원회 5극3특 국가균형성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5선 중진’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전날 ‘배임죄 남용 방지’를 위한 상법 및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22대 국회 들어 민주당 내에서 ‘배임죄 완화’ 관련 법안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의원은 “배임죄 남용이 자본시장을 위축시키고, 기업의 전략적 판단과 투자 유인마저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과도한 형사리스크는 걷어내고, 건강한 경영 판단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행 상법은 발기인, 회사 임원, 사채권자 대표 등이 회사를 위해 맡은 일을 어기고, 자신이나 제3자가 부당한 이익을 얻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특별배임죄’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 다만 이 조항은 이미 형법에도 있는 ‘업무상배임죄’와 내용이 거의 같아, 이중처벌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상법 제622조에 명시된 ‘특별배임죄’ 조항을 삭제한다는 내용이다.

또 형법 개정안을 통해 “경영자가 이해충돌 없이, 본인의 이익을 위해 최대한 합리적으로 판단한 경우에는 배임죄 적용을 배제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신설했다. 즉, 고의적으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면, 경영자는 자신이 가진 정보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하는 것이다. 고의적 사익 편취와 정당한 경영 판단을 명확히 구분하겠다는 취지다.

여권 내부에선 이번 개정안이 여당이 추진 중인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균형을 맞추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3일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이를 명문화하는 상법 개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고, 7월 임시국회에선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골자로 하는 2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기업들이 자기주식을 시장에서 사들인 뒤 이를 없애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방안도 9월 정기국회 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실현과 코스피 5000시대 달성을 위한 법·제도 정비를 연내에 현실화한다는 게 여당의 목표다.

다만 경영진의 책임이 넓어질수록 배임죄 등 소송 남발 우려가 커진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배임죄 완화’ 방안은 재계와 야당의 목소리를 입법에 반영해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동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여당 관계자는 “배임죄가 논쟁거리가 되면 (기업지배구조 개정을 위한) 상법 개정이 진도가 안 나갈 수 있다. 다음 단계로 빨리 넘어가자는 취지”라고 했다.

‘배임죄 완화법’은 형법과도 얽혀 있어 법무부 등과 조율이 신속히 이뤄지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상법 개정안 합의 처리 과정에서 형법상 배임죄의 면책 규정 개정 추진에 대해선 여야가 이미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과, 같은 당 유상범 의원도 대법원의 ‘경영판단의 원칙’을 법에 명문화해, 경영진이 기업 이익을 위한 판단을 했을 때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는민주당 연구모임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코리아 프리미엄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뉴스1

상법 개정을 주도하는 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이날 민주당 의원 공부모임 ‘경제는 민주당’ 강연에서 “재계가 배임죄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니 적극 고민하자고 원내지도부에 건의했다”면서 배임죄 완화 방안을 9월 정기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관련 법안의 9월 정기국회 처리 가능성에 대해 “저희는 적극적으로 풀려고 한다. 다만 형사 시스템이 워낙 오랫동안 해왔던 제도라, 제도적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법무부, 대법원 등과 상의해 최종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피 5000특위 위원인 김남근 의원도 “재계와 투자자 의견도 모아야 하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문제도 다 같이 논의돼야 한다”면서 “7월, 8월에 관련 법이 발의되면 정비하고 정기국회 때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