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혁신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불과 닷새 만에 전격 사퇴하고,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혁신위원장 역할에 한계를 빠르게 느낀 것인지, 처음부터 당대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는 안 위원장 본인만 알 수 있는 사안이다.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안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완전 당원 공천제(당원 100% 공천제)를 과감히 도입하겠다”며 “중앙당은 오직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 관리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역 발전은 등한시하고 중앙정치에 집중하며 공천을 받으려는 사람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으로 지명됐을 때만 해도 전대 출마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혁신위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당시 그는 ‘대선 패배 백서 작성’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한 원인과 과정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동시에 당의 미래를 위한 혁신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지난 주말 사이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에게 대선 후보 교체 작업을 주도했던 이른바 ‘쌍권(권영세·권성동)’ 등 전임 지도부 청산을 요구하며, 당초 내세웠던 ‘선(先)대선백서 작성, 후(後) 인적 청산’ 방침을 전면 뒤집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 의원이 현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카드를 내세워 사퇴 명분을 쌓고 당대표에 출마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① ‘들러리 혁신’ 우려에 플랜B로 선회
안 의원이 혁신위원장에서 당대표 후보로 빠른 태세 전환에 나선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플랜A는 혁신위 활동을 잘해서 전대에 출마하는 것이었겠지만, (조기 전대 등 국면에서) 들러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숨가쁘게 플랜B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며 “쌍권 퇴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고 명분 쌓기용으로 인적쇄신을 선제적으로 내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역시 “안 의원이 나름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혁신위원장을 수락했겠지만, 큰 운동장에 30평짜리 운동장을 따로 긋고 그 안에서만 혁신하라는 주문을 계속 받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안 의원은 10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인적 쇄신 요구’가 ‘당심’이었다고 설명했다.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다고 발표가 나니까 영남 당원들, 현역 국회의원이 따로 찾아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인적 쇄신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지금까지의 혁신위 역사를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②‘중·수·청' 지지자 겹치는 한동훈 불출마 가능성
안 의원의 신속한 플랜B 전환에는 당내 역학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전 대표의 출마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안 의원은 중도·수도권·청년층을 의미하는 이른바 ‘중·수·청’에서 자신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할 경우, 이미 출마를 선언한 조경태 의원 등과의 경쟁에서 해볼 만하다는 셈법도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전 대표는 당대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할 경우 정치적 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궐선거 출마 등 다른 길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이 든 성배’격인 당대표에 도전하는 것보단 원내 진입 후 다시 세를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③ 국힘 옥죄는 3대 특검서 자유로운 점도 자신감
윤석열 정권을 향한 3대(내란·김건희·해병대원) 특검 수사가 국민의힘 의원들을 정조준하며 옥죄기 시작한 가운데 안 의원이 이에 자유롭다는 점도 당대표 출마의 자신감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박찬대 의원은 이른바 ‘내란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내란죄 및 외환죄로 유죄가 확정된 사람이 해당 범죄를 저질렀을 때 소속됐던 정당은 국고보조금을 못 받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런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당대표 행보에 뛰어들며 이슈 선점에 나섰다는 것이다. 최수영 평론가는 “정치권에선 이른바 ‘선빵(선제공격)’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안 의원이 이런 행보는 출마를 저울질 중인 김문수 전 대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를 압박하는 카드로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다만 안 의원의 혁신위원장 돌발 사퇴를 두곤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안 의원이 당대표를 목표로 혁신위원장을 맡았는지, 아니면 순수한 의지로 시작했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어느 쪽이든 절차가 매끄럽지 못했고, 돌출적으로 진행돼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혁신위원장이라면 비대위원장에게 요구하기보다 혁신위원들을 모아 리더십을 발휘하고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처음부터 인적 쇄신을 염두에 뒀던 것이라면 직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인적쇄신안 내놓고, 받지 않으면 혁신위원장 안 받겠다 했었으면 보다 매끄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 조기 전대 블랙홀 속 윤희숙號 혁신위 출범
안 의원의 돌연 사퇴로 혁신 동력이 꺼진 가운데, 국민의힘은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을 신임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윤 위원장은 중도보수를 대표하는 경제 전문가로, 당 지도부와의 소통이 원활해 실질적 변화를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조기 전대 국면으로 이미 전환된 상황에서 혁신위가 얼마나 실질적 동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윤 위원장은 10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지금 이 상태로 전당대회를 치르면 누가 후보가 되든 국민들이 아무런 관심도 안 가질 것”이라면서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당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궤도를 돌려놓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