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 빅테크 기업이 요청한 ‘한국 고정밀 지도(5000대 1축척) 데이터 제공’을 관세 협상 카드에서 제외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 간 ‘2+2 재무통상장관 협의’를 앞두고 부처 간 협상 전략을 조율하기 위해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하고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 제공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휴전국의 안보 특수성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통상협상팀이 이 의견을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정부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날 주재한 대외경제장관회의에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 이동수 국가정보원 1차관 등이 참석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선 한미 관세 협상 테이블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다각적인 시각에서 논의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구글 등이 요청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 제공도 의제로 다뤄졌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50m 거리를 지도상 1㎝로 표현해 골목길까지 세세하게 식별할 수 있는 지도 데이터를 말한다. 구글은 지난 2월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 데이터센터로 반출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요청서를 제출했다. 지난달에는 구글에 이어 애플도 같은 내용의 신청을 했다.
통상 당국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 제공을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미국이 한국의 비관세장벽 중 하나로 정밀지도 데이터 미제공을 꼽고 있는 만큼, 이 문제를 풀어주고 한국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는 카드로 쓰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토부 등은 정밀지도 반출은 ‘협상 카드로 쓸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 유일의 휴전국인데, 안보 당국의 입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해야 한다”면서 “좌표가 표출되면 정밀 타격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반출이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좌표 정보를 활용한 드론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점도 이러한 국토부의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
국토부는 과기부, 국정원 등과 협의를 통해 예정대로 관세협상 시한(8월 1일) 이후인 8월 11일과 9월 8일에 구글과 애플에 각각 정밀지도 데이터 반출 허가 신청 결과를 통보할 계획이다. 정부는 앞서 2007년·2016년(구글), 2023년(애플)에도 정밀지도 반출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