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축사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오르자, 축산농가에서 돼지에게 얼음을 급여하고 있다. /독자 제공

“하루에 돼지가 열댓 마리씩 죽습니다. 축사 안 온도가 39도까지 오르는데, 환풍기 틀고 얼음을 먹여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에요.”

세종특별자치시 인근에서 3만 두 규모로 돼지를 사육 중인 A농장 대표는 지난 14일 “돼지는 땀샘이 없어 열을 식히지 못한다”면서 “사람이 더우면 아이스크림을 먹듯, 돼지에게 얼음을 급여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때 시행하는 생존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선풍기, 에어컨을 틀어도 축사 내 유해가스를 줄이기 위해 문을 열 수밖에 없어 냉기가 빠져나간다”면서 “창문 닫고 냉방 하는 사람과는 조건 자체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B농장 관계자는 “폭염이 본격화되면서 2주도 안 돼 150마리 이상 폐사했다”면서 “올해는 체감상 40도까지 견딜 수 있는 시설이 있는 농가가 아니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때 이른 폭염에 닭과 돼지 등 가축의 폐사가 늘고 농작물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방제 약재 공급과 가격 안정 조치를 통해 대응에 나섰으며, 일부 지자체는 농가가 돼지에게 급여할 얼음을 자체 생산할 수 있도록 제빙기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폭염과 기후 이상으로 인한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에 대응하는 조치다.

15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전국에서 접수된 폐사 가축 수는 총 52만6000마리에 달했다. 닭, 오리 등 가금류가 50만마리 이상으로 대부분이지만, 돼지도 1만9000마리를 넘어서며 늘어나는 추세다.

농작물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수확을 앞두고 있던 배추가 폭염에 녹아내리는가 하면, 상추·깻잎 등 고온에 민감한 엽채류도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빠르게 시작된 고온 현상이 늦여름까지 이어질 경우, 올해 피해 면적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에도 폭염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면적은 2만1200헥타르에 달했다. 축구장(0.71헥타르) 약 3만개에 해당한다.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수박이 진열돼 있다. /뉴스1

사정이 이렇다 보니 히트플레이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때 이른 무더위에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수박, 배추, 무, 멜론 등 여름철 주요 품목 가격이 일제히 오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4일 기준 수박 한 통의 소매 가격은 2만9816원으로 전년 대비 39.75%, 평년보다 41.84% 올랐다. 배추 한 포기 가격은 4365원으로, 전월보다 26.23% 뛰었다.

여름 제철 과일인 멜론(9955원)은 전년 대비 20.23%, 복숭아(10개당 2만3776원)는 13.59% 각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복날 수요가 몰리는 닭고기 가격(육계)도 전년보다 4.28% 올라 6138원을 기록했다.

정부는 폭염 피해 최소화를 위한 범정부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지방자치단체, 농협, 축산 관련 단체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8월까지 운영하며, 가축의 음수 및 사육 상태를 매일 점검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농가에 돼지용 얼음 급여법, 급속 냉방 장치 활용법 등을 안내하고 있으며 현장에 차양막·송풍팬·비상 발전기·영양제 등을 공급하고 있다. 지자체가 편성한 폭염 대응 예산 약 221억원을 8월 이전까지 신속히 집행할 예정이다.

작황 부진 우려가 큰 배추 등 주요 채소 품목을 중심으로는 ‘생육관리협의체’를 운영해 주산지 농협, 농업기술센터 등과 함께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정부는 배추 가격 급등에 대비해 비축물량 3만5500톤을 확보하고 있으며, 수급 상황에 따라 시장에 공급해 가격 안정 조치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응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축산농가에서는 폭염 대응에 필요한 냉방장치 설치 비용 지원과 가동을 위한 전기요금 부담 완화 방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농사용 전기가 산업용보다 싼데도 지속적인 고온에 따라 에어컨·환풍기 등을 장시간 가동해야 하는 여름철에는 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전기요금이 청구되는 경우도 있어, 농가가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희영 동산농장 대표는 “더위에 대응하려면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낮출 수 있는 에어컨 가동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전기요금 부담이 커 설치조차 어려운 농가가 많다”면서 “설치 여력이 있어도 한전의 계약 용량을 초과하면 전력 공급 자체가 막혀 에어컨 증설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