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타당성조사에서 사업의 경제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될 경우, 조사를 조기에 종료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경제성 외 다른 평가 항목에서 만점을 받아도 타당성 확보가 어려운 경우, 불필요한 절차를 줄여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영동고속도로 여주IC인근 인천방향에서 교통 정체가 발생한 모습./뉴스1

14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을 일부 개정했다. “조사 착수 후 경제성 분석결과 등을 고려해 조사 지속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실무조정위원회를 거쳐 분석을 더 실시하지 않고 ‘타당성 미확보’를 결과로 조사를 종료할 수 있다”는 지침을 신설한 것이 골자다.

예비타당성조사는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의 기술적 가능성과 경제·재무 측면의 평가를 통해 사업 진행 여부를 확정 짓는 절차다. 1~2년에 걸쳐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을 차례로 분석해 각각 30%, 40%, 30% 배점으로 사업을 평가한다.

여기서 경제성은 사업의 비용대비 편익(B/C)으로 계산되는 정량지표다.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은 정성지표로 정책의 일관성·추진의지, 재원조달 가능성, 환경성 평가, 고용 유발 효과, 지역낙후도, 지역경제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점수를 낸다.

문제는 B/C 값이 너무 낮아 나머지 정성 지표에서 만점을 받아도 타당성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조사 건이다. 한국도로공사가 추진하는 ‘영동고속도로 서창-안산 확장(6차선→10차선) 공사’ 사업에 대한 타당성재조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 사업은 2012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2016년 기본설계가 완료된 후, 2021년 공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공사가 무탈하게 진행된 2공구(군자-안산 구간)와 달리, 1공구(서창-월곶 구간)는 사업비 문제로 공사가 시작되지 못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논현지구 소음 저감 대책으로 설치하기로 했던 구조물이 ‘방음벽’에서 더 큰 비용이 드는 ‘방음터널’로 바뀐 데다, 공사비도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총사업비가 당초 계획보다 20% 이상 증가함에 따라 정부는 2023년 6월 타당성재조사를 실시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조사에서 1공구의 B/C는 0.2점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해당 사업은 구역이 수도권인 만큼, 지역균형발전 분석 없이 평가위원별로 경제성 60~70%, 정책성 30~40%의 배점으로 평가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타당성조사는 종합평가 점수가 1점 만점에 0.5점을 넘어야 통과할 수 있다. 이 사업의 경우 모든 평가위원이 경제성 배점을 60%로 둔다고 해도, 정책성 점수가 0.95점을 넘어야 한다. 평균 경제성 배점이 65%라면 정책성 점수가 만점을 받아도 통과점을 넘을 수 없다.

기존 제도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조사가 계속 돼야 한다. 특히 이 사업의 경우 도로공사가 사업 필요성을 주장하며 정부와 협의를 이어가면서 2년 가까이 조사가 진행됐다. 결국 정부는 조사를 일찍 끝낼 수 있는 새 지침을 마련했고, 지난달 재정사업평가위원회를 열어 사업을 조기에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행정력 낭비, 시간 낭비 등을 하지 않고 효율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해당 사업이 조기 종료 지침이 적용된 첫 사례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도로공사는 영동고속도로 서창-안산 확장 계획을 10차선이 아닌, 8차선으로 수정해 재추진하기로 했다. 해당 구간에서 여전히 교통 체증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타당성재조사 결과상, 8차선으로 확장할 경우에 적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재설계를 통해 기재부 등과 다시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