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관계자가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농촌진흥청이 디지털 육종 연구로 개발한 '옐로드림' 등 복숭아 품종을 설명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복숭아 열매가 맺히기도 전에 나무에서 납작 복숭아가 나올지 껍질에 털이 있을지를 미리 알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농촌진흥청이 디지털 기반 유전체 분석을 도입해 복숭아 육종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복숭아의 외형 특성을 사전에 판별할 수 있는 유전자 표지를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어린 묘목의 잎에서 유전형 정보를 분석해 열매의 모양(납작형·원형)이나 껍질의 털 유무(복숭아·천도)를 예측할 수 있는 ‘분자 표지’를 마련한 것이다.

기존 육종 방식은 원하는 특성을 가진 품종을 선발하기 위해 수천 그루의 나무를 키우고 수년간 열매가 달릴 때까지 관찰해야 했다. 예컨대 납작 복숭아처럼 수요가 많은 품종을 개발하려면, 3~4년간 1000여 그루를 키워 열매를 확인한 뒤에야 선별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분자 표지를 활용하면, 어린나무일 때 잎에서 유전정보를 분석해 납작형 유전형을 미리 선별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는 약 500그루만 키워도 동일한 선발 작업이 가능하다. 농진청 관계자는 “육종 효율이 기존보다 약 2배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분자 표지는 생물의 DNA에서 특정 형질을 좌우하는 유전자 염기서열 변이를 식별할 수 있는 ‘유전자 지도’ 역할을 한다. 농진청이 이번에 개발한 두 가지 표지는 복숭아의 과형(果形)과 껍질 털 유무를 각각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관련 특허도 출원된 상태다. 향후에는 산도나 수확 시기까지 조기 판별할 수 있는 표지도 개발할 계획이다.

이번 성과는 복숭아 유전자원 445점에 대한 유전체 해독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출됐다. 농진청은 2021년부터 3년간 이들 유전자원을 분석해 총 94만 개가 넘는 유전 정보를 확보했으며, 이 가운데 고품질 데이터 생산에 적합한 150점을 ‘핵심 집단’으로 선별했다. 이 집단은 전 세계 복숭아 유전자원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연구 재료로, 디지털 육종 기반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된다.

농진청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등록된 복숭아 품종은 202점으로, 사과(97점)나 배(58점)에 비해 2~3배 많다. 그만큼 기후대별 품종 개발 수요가 크고, 소비자 선호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껍질이 부드럽고 휴대가 간편한 납작 복숭아, 알레르기 유발 우려가 적은 천도복숭아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농진청은 이번 디지털 육종 기술이 향후 복숭아 품종 다양화와 맞춤형 품종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명수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이번에 구축한 핵심 집단과 분자 표지를 활용하면 신품종 개발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수요에 맞는 품종 다양화와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농진청은 1976년 ‘유명’을 시작으로, 1993년 천도 ‘천홍’, 최근에는 ‘옐로드림’, ‘설홍’, ‘이노센스’ 등 다양한 복숭아 품종을 개발해 왔다. 디지털 육종 기술은 향후 이상기후 대응 품종, 산도·색감·수확 시기 조절 품종 개발에도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