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50%로 인하했다.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올해 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경기 부양에 나선 것이다. 비상계엄과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1400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1360원대까지 떨어지며 하향 안정화된 것도 주된 요인이었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추가 인하 시점을 8월로 점치고 있다. 다음 달 새 정부 출범 이후 경기부양을 위한 경제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고, 미국과 주요국의 관세협상이 7월을 기점으로 마무리될 여지가 있는 만큼 한은도 대내외 여건 변화를 지켜본 뒤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 한은 금통위, 기준금리 2.50%로 내려… 인하 흐름 재개

한은 금통위는 29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2.50%로 인하했다. 한은은 작년 10~11월 연달아 금리를 내린 후 올해들어 동결(1월)·인하(2월)·동결(4월)을 번갈아 선택하면서 금리를 연 2.75%로 낮춘 바 있는데, 이번 결정으로 올해 2월 이후 멈췄던 인하 흐름이 재개됐다.

그래픽=정서희

시장에서는 이번 인하가 어느정도 예상됐다는 분위기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6~21일 채권 보유 및 운용 관련 종사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9%는 금리 인하를 예상했다. 이는 직전 조사인 지난 4월보다 57%포인트(p) 상승한 수치다. 나머지 31%는 금리 동결을 전망했다.

이번 결정에는 경제 성장세 둔화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작년 2분기 -0.2%(전기 대비)를 기록한 후 3·4분기 연속 0.1%대 성장률을 기록하다가 미국 상호관세 리스크가 겹치면서 올해 1분기(-0.2%)에 다시 역성장한 바 있다. 이에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연구기관은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간 인하의 발목을 잡았던 환율 불확실성이 해소된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환율은 미국이 상호관세를 부과한 지난 4월 9일 1487.60원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미·중, 미·일 관세협상 진전 등으로 아시아 통화가 강세를 보이자 원화도 이에 연동돼 절상됐다. 지난 26일에는 환율이 장중 1365.00원까지 내려가면서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금통위원들은 향후 추가 인하 가능성도 활짝 열어뒀다. 이날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3개월 이내 기준금리를 연 2.50% 밑으로 낮출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 총재는 이와 관련해 “4명은 경기가 생각보다 나빠진 만큼, 추가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진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면서 “나머지 2명은 기준금리 인하 효과와 미국 관세정책 변화, 수도권 부동산 가격 변화, 새정부 경제 정책을 점검하면서 금리 인하를 결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했다.

◇ 연내 추가 인하, 1번으로 점치는 시장… “성장률, 한은 치고 보수적”

비둘기(통화완화 선호)적 색채를 진하게 띈 금통위였지만, 시장에서는 금리를 더 내리더라도 인하 속도가 가팔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시장에선 “단기적으로 (기준금리가) 2%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이 총재의 발언에 주목했다. 이날 이 총재는 금통위가 끝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2년 전 ‘1%대의 기준금리를 기대하지 말라’고 했던 발언이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의 임기 말인 내년 5월 금리가 1.75%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는데 과도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연내 추가 금리 인하 횟수는 1번, 시점은 8월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3개월 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금통위원과 그렇지 않은 위원 비율이) 4대 2라는 건 전형적으로 한 번 쉬고 그다음 스텝을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내 아파트의 모습./뉴스1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한은이 금리 인하 시기를 조율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긴 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1~2년 전에 미국이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p 인상)을 단행할 때는 일방적으로 따라가야 했지만, 지금은 연준의 인하 속도 등을 감안할 때 우리가 통화 정책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룸이 굉장히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의 말은) 연준의 금리 결정과 상관없이 국내 상황을 보고 인하하겠다는 의미”라며 “한국이 급하게 (금리)정책을 결정할 만한 대외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이라는 한은의 전망이 과하게 보수적이라는 평도 나왔다. 만약 실제 성장률이 한은의 전망치를 웃돈다면 큰 폭의 금리 인하는 불필요하다. 김성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0.8%라는 수치는 한은 본인들조차 보수적으로 잡았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면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경제성장률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이 이번 전망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앞서 이달 초 있었던 13조8000억원의 추경으로 한은은 경제성장률이 0.1%p가 올랐다고 예측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2차 추경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이지만 한은은 이 영향을 성장률 전망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경제 회복을 위해 취임하면 추경을 즉각 편성하겠다고 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30조원이라는 구체적인 추경 규모도 제시한 바 있다.

한편, 금통위의 금리 결정 이후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상승했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2.7bp(1bp=0.01%포인트) 오른 연 2.341%를 기록했다. 5년물과 10년물 금리도 각각 3.3bp, 5.4bp 오른 연 2.500%, 연 2.760%로 마감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기재부가 이날 18조5000억원 규모 국고채 발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금리가 올랐다. 원화는 보합세를 나타냈다.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일보다 0.6원 내린 1375.9원으로 거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