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그동안 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해 비정례적으로 시행해 온 유동성 공급 수단인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조만간에 정례화할 방침이다.
한은은 30일 한국금융학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개시장운영 :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작성에는 시장운영팀 이종성 팀장·최지언 차장·우한솔 과장이 참여했다.
한은에 따르면 그간 한은의 공개시장운영은 유동성 흡수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경상흑자로 대외에서 공급된 달러를 매수하는 과정에 국내에 풀린 원화 유동성을 흡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매각과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 등 수단이 활용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흡수해야 할 초과 유동성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수출 부진으로 경상 흑자가 줄고, 서학개미를 필두로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가 급증한 영향이다. 오만원권이 발행된 2009년 이후 현금통화 보유가 급증해 작년 말 기준 193조원까지 확대된 점도 초과 유동성을 줄였다.
또한 금융시장 내 비은행 부문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들 기관이 시중 유동성 및 초단기금리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아울러 ▲경제규모 확대 ▲새로운 지급결제 수단 등장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도입 등도 본원통화 수요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한은은 “국외부문으로부터의 유동성 공급 축소, 본원통화 수요 증가 등 공개시장운영 여건 변화를 고려해 유동성 흡수 일변도에서 벗어나 정례적 RP매입 등을 통한 탄력적 유동성 공급을 병행해 본원통화 수요 변화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한은은 현재 매주 실시하는 RP매각과 같이 RP매입도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이르면 올해 상반기에 조만간 실시하기로 했다. 정례 RP매각이 7일물로 실시되는 만큼 RP매입은 이를 피해 14일물 등 다른 만기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한은은 또 “향후 본원통화 수요의 불확실성 심화에 대비해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 수단의 확충 필요성도 검토하고 있다”면서 “기조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장기 RP매입 제도와 금융불안시 신속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한 대기성 RP매입 제도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대기성 RP매입의 경우 사전에 일정 조건을 설정해 놓고, 대상 기관이 필요할 때 언제든 RP매입을 통해 자금을 빌려갈 수 있는 제도다. 주요국에서는 금리가 급격히 변동해 금융안정을 해칠 수 있을 때를 대비해 대기성 RP매입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나아가 이창용 한은 총재는 RP매입을 양적완화 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이날 심포지엄 환영사에서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정책금리가 제로하한(0)에 근접하게 되면 양적완화(QE)와 같은 대차대조표 확대 정책을 도입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유동성 변화 추세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선 방향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