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기 과천시 과천국립과학관 미래상상SF관에서 관람객들이 반도체 관련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뉴스1

지난달 반도체 생산이 19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늘면서 전체 산업생산을 견인했지만, 내수 경기는 다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소비와 서비스업 생산, 설비투자가 일제히 감소했고, 건설업은 교량 사고 여파까지 겹치며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미국 정부의 관세 조치 영향은 아직 통계 지표에 본격 반영되지 않았지만, 향후 수출·투자 전반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전산업생산지수는 114.7(2020=100)로 전월보다 0.9% 상승했다. 두 달 연속 상승세다.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 생산이 3.2% 늘며 광공업 생산 전체를 2.9% 끌어올렸고, 공공행정 생산도 3.8% 늘며 산업생산을 받쳤다.

눈에 띄는 건 반도체다. 반도체 생산은 D램과 플래시메모리 등 메모리 제품 중심으로 13.3% 증가해, 2023년 8월(13.6%)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서버 수요 확대, 범용 메모리 단가 회복, 계약 출하 시기 집중 등의 요인이 작용했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이두원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분기 말 계약 물량 출하 등 계절적 요인 외에도 글로벌 업황 회복과 AI 수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사재기 출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관세 회피 목적의 밀어내기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 요인만으로 보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내수를 보여주는 지표들은 일제히 둔화했다. 소매판매는 2월(1.9%) 반등 뒤 3월 다시 0.3% 감소했다. 통신기기·컴퓨터 등 내구재(-8.6%) 판매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음식료품(2.8%)과 의복(2.7%) 판매는 증가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소매판매액지수는 1.5% 상승해, 2023년 6월(1.5%) 이후 21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조성중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삼성전자의 S25 시리즈 신제품 출시, 전기차 보조금 조기 지급 등이 2월 소비를 밀어올린 반면, 3월에는 기저효과로 다시 주춤한 흐름이 나타났다”며 “내수가 구조적으로 악화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특히 1분기 기준 소매판매는 전 분기와 같은 수준을 기록하며, 지난해 4분기까지 이어졌던 11분기 연속 마이너스 흐름에서 일단 벗어났다. 이 심의관도 “소매 판매 기준으로 보면 그동안의 감소세는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진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비스업 생산도 0.3% 감소했다. 도소매(-3.5%), 금융·보험(-2.1%), 정보통신(-2.1%) 등에서 부진이 이어졌다. 내수 출하 역시 1월 -3.2%, 2월 2.0%에 이어 3월 -0.4%로 다시 뒷걸음질 쳤다. 기업과 소비자 심리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에서 실물 수요도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차트를 들고 상호 관세 부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설비투자도 0.9% 줄었다. 기계류(-2.6%)가 부진한 반면, 자동차 등 운송장비(3.4%)는 호조를 이어갔다. 정부는 미국의 통상 리스크가 기업 심리를 압박하며 투자 결정을 미루게 만들고 있다고 해석했다. 조 과장은 “설비투자 감소에는 관세 우려에 따른 경제심리 영향이 작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기성은 2월(2.4%) 반짝 반등한 뒤 3월에 다시 2.7% 줄었다. 건축(-1.5%), 토목(-6.0%) 모두 감소했으며, 2월 말 경기 안성시에서 발생한 교량 상판 붕괴 사고가 공사 중단을 유발해 하락을 부추긴 것으로 나타났다.

조 과장은 “2020~2021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가 굉장히 늘었다가 공사비와 금리 상승으로 사업성이 악화해 수주가 부진한 상황”이라며 “지난 2월 교량 붕괴 사고가 현장 정지까지 유발하면서 다양한 요인이 복합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산업 지표 전반에서 미국의 관세 인상 조치가 본격 반영되진 않았다. 이두원 심의관은 “관세가 실제 부과된 철강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생산·수출 물량에 아직 큰 변화는 없었다”며 “다만 경제심리 위축이 소비·투자에 간접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1분기 전산업 생산은 전 분기 대비 0.2%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0.5% 감소했다. 건설기성은 전 분기 대비 6.1% 줄며, 지난해 4분기(-6.6%)에 이어 두 분기 연속 급감세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세 효과는 2~3개월 뒤에 반영되는데, 관세 부과 전 물량을 선출하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관세 여파가 본격 반영되면 수출이나 투자 흐름이 큰 폭으로 둔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시적인 반등 흐름만으로 낙관하긴 어렵고, 수요 위축과 정책대응 시차를 감안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