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높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주유소에 ‘바이오에탄올’을 시범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1년여 만에 사실상 무산됐다. 바이오에탄올은 옥수수·밀 등 녹말 작물을 발효시켜 차량 연료 첨가제로 사용하는 것으로, 휘발유 대체 연료로 주목받았다.

정부는 탄소 중립 연료 도입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바이오에탄올 도입을 시도했다. 정유업계는 바이오에탄올의 경우 스스로 생산이 불가하고 모두 외부로부터 구매해야 하는 구조인 탓에 경제성이 떨어져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정유업계 등에 따르면, 민간 주도로 바이오에탄올 시범 사업을 올해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정부 계획이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주유소의 주유기. 숫자 '85'가 적힌 가장 왼쪽 버튼이 바이오 에탄올 85%에 휘발율 15%를 섞은 'E85' 연료다. /시카고=전준범 기자

◇ 바이오에탄올 시범 도입 발표 1년3개월, 흐지부지

산업부는 지난 2022년 10월 ‘친환경 바이오연료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 차량과 시범 주유소를 대상으로 바이오에탄올을 시범 도입해, 안전성·친환경성·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바이오에탄올은 옥수수·밀·사탕수수·감자 등 녹말 작물을 발효시켜 만든다. 차량 등의 연료 첨가제나 휘발유 대체 연료로 쓰인다. 유럽, 일본, 남아메리카, 미국 등지에선 바이오에탄올을 휘발유에 일정 부분 섞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신재생 연료 의무 혼합제’(RFS)에선 바이오디젤은 섞도록 하고 있으나, 아직 바이오에탄올의 혼합을 규정하고 있진 않다.

참고로 바이오디젤은 기름야자·콩·유채씨 등 작물의 식물성 기름을 추출해 만들어져 경유에 혼합해 쓰이는 것으로 바이오에탄올과 다르다. 바이오디젤 원료는 국내서도 일부 재배가 가능하고 생산 기술도 갖춰져 있다. 바이오에탄올이 대부분 미국·브라질 등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작물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과 차이가 있다.

정부는 당초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산업계 변화가 촉구되는 가운데, 탄소중립 연료인 바이오에탄올도 하나의 대체재로 고려해 보자는 입장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 때마다 고유가 리스크가 부각되는 가운데, 석유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우리나라에 물가를 낮출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미국과의 통상 관계 측면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바이오에탄올의 국내 도입이 확산하면 당장 옥수수 등 곡물 수출에 힘쓰는 미국이 수혜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는 당초 민간 정유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조를 바탕으로 일부 주유소에 시범 도입해 타당성을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었다”면서 “그런데 정유업계들이 부정적인 입장이라 추진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 정유사 바이오연료 투자 의지 크지만 바이오에탄올은 ‘논외’

실제로 정유업계에선 ‘바이오에탄올을 도입할 유인이 없는 것을 넘어 도입을 반대한다’는 완강한 입장이다. 바이오에탄올은 바이오디젤과 달리 정유사 스스로 생산할 수 없고 외부로부터 구매를 해야 하는데,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바이오에탄올은 기본적으로 곡물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술 만드는 주정업체들로부터 구매하거나 외국으로부터 이를 수입해야만 한다”며 “정유업체는 직접 생산해서 섞는 것을 원하지, 구매해서 쓰기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에탄올을 3%를 섞으면, 석유를 3% 덜 쓴다는 것”이라며 “정유사 입장에선 득 될 건 아무것도 없고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에탄올은 휘발유에 혼합해 사용하는 것인데, 휘발유 차량의 경우 이미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로 꾸준히 대체되고 있어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이 지난 9일 개정되면서 정유업계가 바이오 연료 생산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바이오에탄올’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간엔 석유정제업자가 정유 공장 내에서 원유를 정제하는 것만이 가능했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원유 외에 다른 친환경 원료를 혼합해 바이오 항공유·바이오 선박유 등 바이오연료도 함께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국제적 수요가 높고 국내 정유업계가 직접 생산 가능한 바이오항공유(SAF) 등에 대해선 정유업계의 투자 의지가 강한 분위기이지만, 바이오에탄올은 그렇지 않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경유 및 향후 선박유·항공유 등 비전기화 수송 분야 수요 증가가 전망되는 바이오디젤에 대해선 국내 업계가 적극적인 반면, 바이오에탄올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