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바뀌었지만 전문성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경제정책을 찾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편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릴 수 있다는 점이겠죠?”
10월 5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광개토관 연구실에서 만난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옮긴 후 5년을 지낸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재학생 신분이던 2005년 행정고시(49회)에 합격하고, 학교 졸업 후 행시 50회와 함께 연수원 교육을 받아 전체 수석을 차지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2007년 재정경제부(현 기재부)에 입성한 김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정책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외경제국·국제금융국 등에서 엘리트 관료 커리어를 쌓았다. 공직자로서 순탄대로를 걷던 김 교수를 학자의 길로 이끈 계기는 미국 유학이었다. 공직 5년 차에 미 국무부가 주관하는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된 그는 브랜다이스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세종대로 둥지를 옮겼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브랜다이스대는 경제학·생물학 등의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연구 중심 명문 대학이다. 200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더릭 매키넌 미 록펠러대 교수, 1990년 필즈상 수상자인 에드워드 위튼 미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 등을 배출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등도 동문이다
“공직 생활이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유학을 간 것도 훌륭한 관료가 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막상 제대로 공부해보니 연구 활동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박사 과정을 마칠 때쯤 지도교수 중 한 분께서 학계에 남으라고 제안도 하셨고요. 학자로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올바른 경제정책을 찾는 게 공직 생활만큼 보람될 것으로 생각해 전직(轉職)을 결심했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인생을 ‘도전→실패→도전→성취’의 반복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으나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사교육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중학생 시절 학교 내 외고·과학고 준비반에 들어갔지만, 전략·정보의 부재와 동기부여 상실로 합격표를 받는 데 실패하고 경기도 성남 구시가지의 일반고로 진학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져 아버지께서 막 시작한 사업마저 실패했습니다. 일반고에서도 학원·과외는 꿈도 못 꿨죠. 대신에 학교 수업에 최대한 집중하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다음에는 잠들기 전까지 집에서 교육방송을 시청하며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서울대 기초과학계(물리학 전공)에 합격할 수 있었죠.”
서울대 합격표를 당당히 성취했으나 학교에 들어가자 다른 도전 과제가 그를 기다렸다. 전국에서 모인 천재들이 김 교수를 압박한 것이다. 대한민국 수능 역사상 첫 만점자로 유명한 오승은씨가 과동기였다. 주변에 오씨 같은 사람이 수두룩했다. 김 교수는 “어려서부터 과학자를 꿈꿔 물리학을 전공으로 택했는데, 학문을 깊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고민과 방황 속에서 김 교수에게 희망으로 다가온 건 우연히 듣게 된 경제학 수업이었다. 과학에서 보던 수학적 분석 툴로 인간의 선택과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재미를 느낀 그는 경제학을 복수 전공으로 택해 학업을 이어갔다. 여기에 학창 시절 외환위기를 겪은 경험이 합쳐지면서 자연스레 경제정책을 만드는 재경직 관료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에 도달했다. 입대 기간을 포함해 총 3년 동안 행시를 준비해 2005년 합격했다.
행시 50회 수석으로 연수원을 졸업한 김 교수는 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재경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실근무 5년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시절에도 김 교수는 특유의 성실함을 발휘해 지도교수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수능 공부를 할 때처럼, 행시 준비를 할 때처럼, 공무원 생활을 할 때처럼, 브랜다이스대에서도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 시간이 쌓여 학계에 남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본다”며 “남들처럼 여행도 많이 못 가고 남편 뒷바라지와 육아에 헌신한 아내 덕분이기도 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경제부처 공무원 경험이 경제학과 교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했다. “경제부처 공무원, 특히 5급 사무관의 주요 임무는 정책 보고서를 논리 정연하게 작성하는 것입니다. 각종 회의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주어진 정책 과제에 대해 가장 적절한 대응책을 찾아 논리적이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표현해야 하죠. 주장의 논거를 찾고 논리적으로 정리해 글 쓰는 법을 배운 것이 지금도 큰 도움을 줍니다. 또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던 습관이 연구 활동에도 적용되니 좋습니다.”
현재 김 교수 앞에 놓인 새로운 도전 과제는 연구 성과다. 경제학자로서 모두가 인정하고 또 본인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그는 말했다. 김 교수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공무원으로서 내 앞에 놓인 미래는 제법 괜찮았고 난 그걸 다 내려놓고 학자의 길에 도전장을 냈다”며 “좋은 연구 실적으로 우리 경제·사회에 도움을 주고, 학자로서 나 자신도 입증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