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K)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연일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상의 3인조 K팝 걸 그룹 ‘헌트릭스’가 무대 밖에서 악귀를 사냥하는 영웅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40개국이 넘는 넷플릭스 영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영화에 나온 OST도 빌보드와 스포티파이 등 전 세계 음원 순위를 휩쓸었다. 해외에선 2013년 디즈니의 ‘겨울왕국’ 열풍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케데헌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만큼 한국적 요소를 충실히 담았다. 주인공들은 김밥과 설렁탕을 먹고, 몸이 안 좋을 땐 한의원에 간다. 또 남산 서울타워와 낙산공원 성곽길을 배경으로 악귀를 퇴치하고, 후배 아이돌 그룹을 한국어로 ‘후배’라고 부른다. 휴지를 깔고 수저를 놓는 일종의 식당 예절도 담겼다. 가히 한국 문화의 ‘고증(考證)’이라 표현할 만하다.

놀랍도록 한국적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한국산이 아니다. 일본 자본이 소유한 미국 할리우드 제작사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미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가 공개했다.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과 한국계 작가를 부인으로 둔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이 연출을 맡고, 한국인 작곡가, 아트 디렉터들이 참여해 디테일을 살렸다.

케데헌의 흥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한국적인 것이 돈이 된다’, 그리고 ‘꼭 한국산이 아니어도 된다’. 한국 문화를 주제로 한 콘텐츠를 외국 회사가 만들어도 성공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케데헌 열풍에 ‘국뽕(자국에 도취해 찬양하는 행태)’이 차오르다가도, 어딘가 씁쓸함이 남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실제 케데헌을 주제로 한 유튜브 영상엔 “돈은 소니랑 넷플릭스가 벌고, 우리는 기분만 좋아졌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K뷰티 업계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포착된다. 영국 K뷰티 편집숍 ‘퓨어 서울’, 핀란드 K뷰티 브랜드 ‘화랑품’ 등은 모두 현지인이 설립한 현지 K뷰티 브랜드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은 화장품 성분 규제가 까다롭고 유통 규제가 복잡해 K뷰티 기업들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일각에는 “한국에서 케데헌을 만들었으면 이렇게 못 만들었을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 케데헌에는 라면, 호떡, 도토리묵, 깍두기, 나물, 쌈장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이 나오지만, 정작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김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매기 강 감독이 의도한 것이다. 그는 한 외신 인터뷰에서 “김치가 한국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음식인 것처럼 다뤄지는 게 너무 클리셰(진부한 표현)적”이라며 “사람들에게 덜 익숙한 한국 음식들을 소개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제 ‘K’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양식)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장르가 된 순간, K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도 만들고 유통할 수 있다. K팝과 K뷰티, K푸드 등 잇단 K 콘텐츠의 성공으로 인해 앞으로 K라는 장르에 올라타려는 해외 자본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더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메이드 인 코리아’에 매몰되지 않고 한국에 대한 국제적인 시각을 갖추는 노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