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래곤 길들이기(How to Train Your Dragon)’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바이킹과 드래곤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바이킹들은 드래곤을 말살시키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전사들이다. 그러나 족장의 아들 ‘히컵’은 다르다. 어느 날 히컵은 베일에 싸인 전설의 드래곤 나이트 퓨어리를 만나 친구가 된다. ‘투슬리스’라는 이름도 지어준다.

히컵은 ‘드래곤은 죽여 없애야 한다’는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바이킹들의 신념에 맞선다. “우리는 이 녀석들을 죽일 필요가 없다고요.(We don’t have to kill them).”라며 드래곤 길들이기에 나선 히컵은 드래곤 위에 올라 비행을 한 최초의 바이킹이 된다.

영화 마지막엔 흉폭하고 거대한 드래곤 ‘레드데스’가 등장한다. 모든 드래곤은 용암 가득한 동굴에 사는 레드데스에게 먹이를 바치며 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바이킹들이 레드데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히컵은 투슬리스에 올라타 레드데스를 무찌르고 바이킹들을 구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애니메이션, 실사영화까지 나온 이 판타지물은 어른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모두 악(惡)으로 규정할 때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맞서 싸우는 것뿐이다. 그러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상대로 인정할 때는 함께 시간을 나누고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서로를 길들이고 함께 힘을 나눠 돕는 것도 가능해진다.

정부는 2019년 12월 ‘12·16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했다. 당시 언론인들은 물론 많은 국민도 충격을 받았다. 수요공급의 원리와 시장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한 경제부처가 일정 금액을 기준으로 대출을 전면 금지시킨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보유한 국가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다주택자와 투기세력을 절대 악으로 보고 이들을 박멸해야 한다는 식의 인식이 아니고는 내놓기 힘든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런 충격요법도 효과는 6개월 정도였다. 2020년 하반기부터는 다시 집값이 상승했다.

'드래곤 길들이기' 스틸 컷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2번의 정권 교체가 이뤄진 지난 6월 27일 정부는 다시 부동산 대출규제 대책을 내놨다. 이번에는 6억원 한도라는 대출 총량 규제를 내놨다. 재건축과 재개발에 필요한 이주비 대출에도 이 규제를 적용했고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1억원 한도),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등도 내놨다. 신혼부부에게 저리로 내주던 정책 대출인 버팀목 대출의 연 소득 완화 방침도 철회해 연 소득 7500만원이 넘으면 대출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 정부의 정책에 많은 사람이 주택 마련을 위한 자금조달 계획을 다시 짜거나 일부는 계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12·16 대책′보다 좀 더 정교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다주택자와 무리하게 대출을 끌어 집을 사는 투기세력에 의해 왜곡돼 있고, 이들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는 인식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지방의 다주택자들이 왜 지방 집들을 처분하고 서울 강남의 고가 아파트 한 채를 사려고 하는지, 그들이 지방 집들을 매물로 내놓는 것이 지역 경제와 임대차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 더 알아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정부의 선택은 ‘길들이기’보다는 ‘죽이기’에 가깝다.

정부가 앞으로 공급대책을 포함한 실수요자 중심의 부동산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대책을 발표할 때는 조금 더 시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심리를 들여다봤으면 한다. 지방의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고 서울로 몰려오지 않을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혜택은 어떤 것이 있을지, 대출을 한계치까지 받지 않고도 선택할 수 있는 실수요자들의 주거지는 어떤 곳 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기금을 조성해 국민의 주택 보급률을 높인 싱가포르, 저소득주택세액공제(LIHTC)를 통해 저소득층에 주택을 공급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미국 정부의 사례 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드래곤과 인간은 친구가 될 수 있다.(Dragon and humans can be friends).” 정부와 시장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