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지도부 구성을 마무리하면서 상법 개정안 처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은 지난 15일 코스피 5000으로 가는 데 꼭 필요한 상법 개정안을 민생 법안 중 가장 먼저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비롯해 전자 주주총회 도입, 집중 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인원 확대, 감사위원 선출 시 3% 룰(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기존 상법 개정안보다 더 강한 규제들이 포함됐다. 민주당은 개정안 시행 시기도 유예 기간 없이 공포 즉시 시행으로 앞당겼다.

경제계는 경영 활동 위축, 장기 전략 수립 차질, 배임 소송 남발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상법 개정에 반대해 왔다. 행동주의 펀드, 기업 사냥꾼 등의 경영권 위협 우려도 제기된다. 경제계는 그간 우려되는 사안을 정치권에 다각도로 전달했으나, 실제 논의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소액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일반 주주의 권한을 키우는 상법 개정의 취지는 존중돼야 한다. 그간 많은 기업의 이사회 구성이나 운영 방식이 지배 주주 이익 중심으로 짜여져 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기업들의 우려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내엔 기업이 외부의 경영권 침해 시도에 대응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 장치가 거의 없다. 미국·일본·프랑스 등 주요국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특정 주식에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dual-class voting shares),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신주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포이즌필(poison pill)과 같은 제도를 시행 중이다. 미국 영상 플랫폼 넷플릭스는 2012년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이 10% 가까운 지분을 매입하고 경영권 확보를 시도하자 포이즌필을 발동해 경영권을 지켰다.

그나마 국내 기업이 쓸 수 있는 도구가 자사주인데, 이 역시 앞으로는 활용이 막힐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대선 공약에 자사주 원칙적 소각을 포함시켰다. 상법 개정안 최종안에 이 내용이 담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여권은 상법 개정을 무작정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경제계의 불안과 우려를 덜어낼 장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경영권을 위협받을 경우 정당하게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장해야 균형이 맞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5대 그룹 총수 등을 만나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라고 했다. 기업이 족쇄에 묶이지 않고 성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상법 개정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