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미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과학기술 분야를 담당할 과학기술정보통신관(과기정통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2일 과기정통부와 외교부 등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지난 3월 외교부에 주미대사관 과기정통관 증원을 위한 소요정원요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 협의가 남았지만 1명이 증원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조선비즈는 작년 1월 주미 한국대사관의 과기정통관이 2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고 단독 보도했다.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분야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다. 원래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에서 각 1명씩 2명이 과기정통관으로 주미 한국대사관에 나갔는데, 2023년 9월 과학기술을 담당하던 과기정통관이 한국에 복귀한 이후 후임자가 나가지 못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과학기술 담당 과기정통관이 없다는 말이다.

당시 재외공관 주재관을 관리하는 외교부가 한 부처에서 주재관 2명을 보낼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사태로 정신이 없던 과기정통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과학기술을 담당할 과기정통관이 사라진 것이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과 중국, 유럽, 일본, 러시아 등 주요국의 패권 경쟁이 다시 격화하고 있다. 지난 트럼프 1기 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첨단 과학기술이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섰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중에서도 단연 최전선이다. 연간 R&D 예산만 수백조원을 쓰는 투자 규모만 대단한 게 아니다. 서부 실리콘 밸리와 동부 보스턴을 중심으로 혁신 기업들과 함께 MIT,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같은 유수 대학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재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협력을 하든 경쟁을 하든 모두가 미국을 주시한다. 미국의 핵심 파트너인 일본은 미국에 과학기술을 전담할 직원만 열댓 명을 보냈다고 하고,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중국도 과학기술 전담관 10여 명이 주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미국에 과학기술을 전담할 과기정통관이 없다는 건 눈을 가린 채 전쟁터에 나선 것과 다름 없다. 그 결과는 얼마 전 미국 에너지부(DOE)가 민감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올린 사실을 우리 정부가 모르고 있다가 뒷북 대응하는 일로 나타났다.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과기정통관 증원에 나섰다는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이유다.

외교부, 행안부,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 증원이 이뤄지더라도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쟁국이 십수 명씩 과학기술 전담관을 파견하는 마당에 이제 1명을 원상 복구하는 게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까. 과학기술 외교 분야의 슈퍼 히어로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바랄 건 많지 않아 보인다. 전담 인력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할 텐데, 이걸 결정할 리더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새 정부에서 이 문제가 해결될지도 미지수다. 숱한 대선 공약 중에 과학기술 외교 분야의 명쾌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내일 치러질 대선에서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지만, 과학기술 외교가 새 정부의 시급한 과제라는 건 분명하다. 기술 패권 전쟁은 이미 한창이고, 우리 몫을 지킬 장수가 전쟁터에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