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국적기 항공사를 가진 한진칼(180640)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2대주주 호반그룹이 지분을 1% 늘리면서다. 대주주 조원태 회장 측과의 지분 격차가 불과 1.5%포인트(p)로 좁혀지자, 한진칼이 또 다시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9만원이 채 안 됐던 한진칼 주가는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15만원대로 직행했다. 조 회장과 호반이 한 주라도 더 사 모으기 위해 경쟁할 가능성이 커졌기에, 기대 심리로 인해 매수세가 집중된 것이다.

그러나 불기둥은 오래 못 가 꺾였다. 두 번의 상한가를 기록한 다음날, 한진칼은 17% 넘게 떨어지며 12만원대로 주저앉았다. 단기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진 탓으로 해석된다.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기업 주가가 급등락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경영권 테마주’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경영권 테마주의 말로는 대부분 좋지 않다. 경영권 분쟁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주가가 치솟지만, 양측이 극적인 합의에 도달하면 상승분을 반납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분쟁 당사자들이 화해하지 않더라도 급락하는 사례도 많다.

지난해 우리 자본시장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됐던 고려아연(010130)도 경영권 테마주였다. 최윤범 회장과 MBK파트너스·영풍이 한 주라도 더 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동안 주가는 240만원까지 치솟았다. 50만원대에서 거래됐던 주식이 5배 가까이 폭등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가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4월 초엔 64만원까지 내렸다.

경영권 분쟁은 호재가 맞을까. 수요와 공급 논리만 놓고 생각하면 주가가 오를 만한 재료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경영권 분쟁 종목에는 프리미엄이 아니라 리스크로 인한 디스카운트가 적용돼야 하는 게 정상이다.

경영권 분쟁은 기업에 위기다. 지분 다툼이 벌어지는 순간 의사 결정은 마비되고 중요한 사업 계획들은 줄줄이 지연된다. 경영권이 불안한 기업과 어떤 고객이 장기 계약을 맺고, 어떤 파트너가 협력을 도모하겠는가. 불확실성의 증가는 곧 경영 리스크의 확대다.

‘경영권 분쟁=프리미엄’이라는 공식이 통용되고 있는 건 우리 주식시장이 재료 중심의 테마성 투기장으로 변질됐다는 걸 방증한다. ‘누가 인수하느냐’, ‘어디까지 오를까’만이 주된 관심사가 되고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과 중장기 전략은 뒷전으로 밀린다.

비록 비상장사이지만, 에어프레미아는 경영권 분쟁이 기업에 얼마나 큰 리스크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에어프레미아는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지난해 국토교통부로부터 개선 명령을 받았는데, 2대 주주를 견제해야 했던 최대주주 AP홀딩스가 반대하는 바람에 1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실패한 적이 있다. 결국 자금난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최근엔 항공기 정비를 제때 완료하지 못해 운항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기업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면, 시장은 ‘누가 이길지’ 대신 ‘이 분쟁으로 기업이 얼마나 상처를 입을지’ 궁금해해야 한다. 프리미엄을 추구하다가 디스카운트를 온몸으로 맞는 일은 지양돼야 한다. 투자는 확률 게임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판단이다. 이 단순한 진실을 시장은 언제쯤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