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휘황찬란한 사진을 보며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 순위는 58위였다. 작년 52위에서 6계단 미끄러졌다. 행복 수준은 베트남보다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로는 소득이나 거주 지역에 따른 격차가 심해진 점이 꼽혔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박탈감을 부채질한 것으로 분석됐다.
재벌 3·4세 간판을 단 인플루언서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늘었다. 재벌 3·4세는 상대적으로 일순간에 인플루언서로 등극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일단 인플루언서가 되면 손쉽게 돈방석에 앉는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게시글 하나하나가 돈이고, 어쩌다가 화장품 같은 소비재 하나를 자체 제작하고 공동구매를 진행하면 쉽게 돈이 벌린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재벌과 인플루언서라는 매력적인 두 단어가 만나도 사업을 성공적으로 못 이끈 사례가 여럿이다. 2010년 설립한 켐텍이 선보인 코랄리에 치약이 대표적이다. 켐텍은 DL그룹 이해욱 회장의 동생이자 이준용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인 이해창 대표가 이끌고 있는 회사다. 켐택은 원래 석유화학 제품이나 건축·산업용 설비 자재 취급 업체로 DL그룹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늘리며 성장했다.
하지만 2017년쯤부터 그룹사 의존도를 낮추면서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내놓은 상품이 코랄리에 치약이다. 이 치약은 팔로워 13만명의 인플루언서 이주영씨가 종종 홍보한다. 이주영씨는 이해창 대표의 딸로 재벌 4세다. 하지만 코랄리에 치약 판매 성적은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인플루언서, 소비재의 만남 결과가 예상만큼 성공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애경그룹 3세 채문선 대표가 이끄는 화장품 브랜드 탈리다쿰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탈리다쿰의 매출액은 8억928만원, 당기손실은 29억1200만원을 기록했다. 2023년 매출액은 5억7632만원, 당기순손실은 20억3613만원이었다. 매출은 증가했지만 당기순손실도 커진 것이다.
채 대표는 탈리다쿰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 유튜브로 일상생활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기도 했다. 재벌 3세의 일상이 궁금한 이들이 모여들면서 유튜브 영상을 올린 지 6일 만에 구독자 1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를 사업 성공으로 이끌긴 역부족이었다. 재벌, 인플루언서, 소비재가 만나도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물론 SNS의 발달로 인플루언서가 되고 사업 대박을 이룬 사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8년 로레알그룹에 국내 여성 의류 쇼핑몰 ‘스타일난다’를 6000억원 수준에 매각한 김소희 대표가 원조 격이다. 2017년 창업한 화장품 브랜드 티르티르를 1400억원 수준에 매각한 인플루언서 이유빈 대표도 손꼽히는 성공 사례다.
매각으로 드러난 성공 신화가 아니더라도 맨바닥에서 성공을 만들어 낸 사례는 곳곳에 있다. 2019년 홀연히 나타난 명품 언박싱 유튜버 ‘떴다 왕언니’가 대표적이다. 이 채널은 광고 한번 없이, 얼굴 공개 없이 구독자 23만명을 순식간에 모아 화제를 모았다. 2019년이면 이미 유튜버도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한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던 때다. 후에 이 유튜버는 한때 유명했던 미시족 쇼핑몰 대표로 알려졌고 ‘한번 성공을 경험한 사람은 또 다른 성공도 만들어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혹자들은 이들의 성공이 우연이었다거나 그저 운이 좋았다고 폄하한다. 하지만 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번 해보지’ 정신으로 일단 일을 시작했다는 점, 중간에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끈기 있게 일을 이어 나갔다는 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든 이를 돌파했다는 점이다. 남들과는 한끝이라도 다르게 할 수 있게 노력했다는 점도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꼽혔다.
헬조선, 벼락 거지, 흙수저 등 시기마다 비관적인 신조어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이 팽배할 때도 어디선가 성공 신화는 만들어졌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재벌 타이틀과 화려한 명품, 모두가 선망하는 인플루언서는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가지고 싶은 매력적인 키워드다. 하지만 성공을 보장하는 치트 키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