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삼성의 가장 큰 문제는 내부 경쟁 시스템이 완전히 오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깥 기업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이해관계가 갈리고 있으니 이재용 회장이 언급한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 새도 없이 밥그릇 싸움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만난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TV, 가전 등 주요 사업부의 경영 전략이 내부 부서, 팀 혹은 특정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 충돌로 이어지면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고(故)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로 완제품 부문(DX)장이 임시직 체제로 전환된 가운데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연루로 해체된 미래전략실(미전실) 재건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맏형격인 DS(반도체)부문은 부서 이기주의와 임원들의 힘겨루기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역량 강화를 위해 파운드리 사업부의 정예 인력을 수혈하기로 결정했으나, 이를 두고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2014년 DS부문장을 전격 교체하며 부서 간 이기주의 타파와 협업을 내세웠지만 좀처럼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X사업부의 갈등 구도는 여전하다. 한때 세계 정상급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설계와 제조로 콤비를 이뤘던 시스템LSI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는 첨단 공정에서 칩 양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수년 간 네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MX사업부가 가장 안정적인 선택지인 퀄컴만을 우선순위로 두고 삼성 반도체에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용인 시스템LSI 사업부장(사장)은 이를 인식한 듯 “네탓 공방과 부서 간 이기주의를 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3나노 모바일 AP 개발과 양산 과정에서 여전히 엇박자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엔지니어는 “시스템LSI 사업부의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설계 및 테스트가 퀄컴 등에 비해 후순위로 밀려있고, 파운드리와의 협업도 배타적인 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TV와 가전도 마찬가지다. QLED TV와 OLED TV 시장에 대한 고위 임원들의 전략적 판단이 엇갈리면서 적확한 시장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올해 초 OLED TV를 새롭게 출시하면서도 정작 마케팅 전략은 소극적이었는데, 이는 QLED TV를 밀고 있는 경영진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문별, 사업부별로 신속한 시장 대응을 위한 교통정리와 선택과 집중, 빠른 피보팅(방향전환)을 위해 컨트롤타워 재건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미니 미래전략실로 불리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가 존재하지만, 사실상 재무·인사에 포커스를 맞춘 조직이기에 미래전략보다는 사업부 감시 기능의 역할이 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삼성의 총수인 이재용 회장이 직접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이재용의 사람들’이 전권을 갖고 책임도 지는 구조가 절실해졌다. ‘사람을 신중하게 쓰되, 썼으면 의심하지 말고 맡기라’는 이병철 창업주의 ‘용인물의(用人勿疑)’ 정신은 옛말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삼성처럼 ‘인물난’과 내홍에 허덕이고 있는 시기에 빛을 발하는 경영철학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