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지난 2일(미국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국가별 상호 관세 조치에서 46%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상호 관세가 부과된 국가 중 6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베트남을 해외 핵심 생산 거점이자 대미 수출 기지로 활용해 온 한국 기업은 대응 방안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베트남은 지난해 미국이 중국, 유럽연합(EU·European Union), 멕시코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무역 적자를 본 국가였다. 고율 관세를 예상한 베트남은 미국의 상호 관세 발표 전부터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 자동차 등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고 일론 머스크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의 시범 운영을 승인하며 선제적으로 유화책을 내놨으나, 고관세를 피하지 못했다.

베트남 정부는 미국의 상호 관세 발표 직후 기민한 대응에 나섰다. 베트남 최고 권력자인 또럼 공산당 서기장이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대미 관세를 제로(0)로 낮추겠다는 의향을 밝히며 관세 면제 논의 약속을 직접 받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폭탄을 터뜨린 후 세계 각국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국가별 반응은 크게 협상파와 보복파로 나뉜다. 대만은 상호 관세(32%)가 부당하다고 실망감을 드러내면서도 트럼프 정부를 향해 무관세 시행, 비관세 무역 장벽 제거, 대미 투자 확대 카드를 내밀며 협상을 요청했다. 대만 정부는 수출 기업 등을 대상으로 총 2880억대만달러(약 12조7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책과 대출 이자 감면책 등의 긴급 대책도 내놨다.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만간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에 대한 품목 관세를 부과받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 EU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10일부터 미국이 부과한 상호 관세와 같은 세율(34%)의 보복 관세를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의 대중 관세율은 트럼프 2기 들어 추가된 54%를 포함해 60%가 넘는다. 중국은 대미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고 미국 방산기업 등을 수출 통제 리스트에 추가했다.

관세 전쟁의 포성 속에서 한국 경제는 1~2위 교역국인 미·중 싸움에 끼어 충격에 더 취약하다. 교역량 감소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특히나 치명적이다. 위기감이 고조되며 주식·환율 등 금융시장은 공포에 빠졌다.

관세 조정을 위한 대미 협상이 시급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정부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크다.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가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도 관세가 제외되지 않았다. 난관을 헤쳐나가려면 정부와 산업계, 정치권이 한 팀으로 뭉쳐야 한다. 정부가 관세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국내 충격 확산을 줄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치권의 지원이 절실하다.

조기 대선에 돌입하면서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더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산업계에선 추경 계획에 관세 전쟁 영향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 구조가 비슷한 대만처럼 수출 기업과 무역 지원 예산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가 대립하는 사이 기업들은 무기도 없이 전쟁터 한복판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소한의 방어막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