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도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이자, 경제재정소위원회 위원장인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소위에서 합성니코틴 전자 담배도 일반 담배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정부 의견에 이같이 답하고 묵살했다.
경제재정소위가 산회하고 약 50일이 되가지만 합성니코틴 담배 규제와 관련한 논의는 계속 공전(空轉) 상태다. 국회가 방임하는 사이 합성니코틴 담배로 흡연을 시작하는 청소년만 매일 늘어갈 뿐이다.
합성니코틴 담배는 니코틴 용액과 첨가물 등으로 만든 액상형 전자담배를 말한다. 현행법상 ‘담배’는 ‘연초의 잎’을 원료로 쓴 것으로 한정하고 있어, 합성니코틴은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합성니코틴 담배를 팔아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온·오프라인에서 판매업체들이 무분별하게 늘고 있다. 스쿨존에 합성니코틴 담배 자판기를 설치하는 업자들도 나올 정도다.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포함시켜 규제해야 한다는 법안은 2016년에 처음 발의됐다. 햇수로 10년째가 됐지만 진전은 없었다. 과거엔 합성니코틴의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아, 규제할 명분이 없었다.
지난해 합성니코틴 원액에 유해물질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 보고서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보고서는 합성니코틴 전자담배의 유해물질 총량이 천연니코틴 전자담배보다 많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26일에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무니코틴’이라고 표시한 액상형 전자담배를 검증한 결과, 니코틴이 상당량 검출됐다는 한국소비자원의 발표도 나왔다.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선 합성니코틴도 일반 담배처럼 규제를 해야 한다. 특히 호기심이 많고, 자제력이 성인보다 떨어지는 청소년이 흡연을 시작하는 걸 막으려면 합성니코틴 담배에 대한 규제는 필수불가결하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실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자 10명 중 3명은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다. 이 중 60%는 전자담배에서 일반 궐련담배로 넘어간다고 한다. 합성니코틴 담배가 청소년들의 흡연 접근 경로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담배사업법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도 이러한 우려를 공감하고, 규제 도입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국회에서도 합성니코틴을 담배사업법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엔 크게 이견이 없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정태호 의원은 최근 기재부와의 담배사업법 논의에서 합성니코틴 판매업자들에게도 일반담배를 팔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담배판매권을 갖고 일반담배를 판매하는 소상공인들이 합성니코틴 담배를 판매하고 있으니, 합성니코틴 담배를 팔던 소상공인들에게도 일반담배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담배판매권은 상당히 민감한 이슈다. 편의점의 매출 40%가 담배에서 나올 정도로, 담배판매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 권리이다. 이러한 권리를 무분별하게 나눠줄 경우, 시장에 충격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민건강권을 훼손하는 정책이란 비판도 피할 수 없다.
‘한 사람도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은 정치에서 이상론에 불과하다. 다수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청소년지킴실천연대의 박진환 사무총장은 “정 의원의 발언은 규제 사각지대를 이용해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팔고 있는 업자들을 보호하자는 말”이라며 “청소년들이 합성니코틴 담배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소상인들도 지금의 논란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한 담배업계 관계자는 “청소년에게 팔아도 처벌을 받진 않지만, 신분증을 확인하고 청소년에겐 팔지 않는 전자담배 매장도 많다”면서 “흡연 문화의 다양성을 기대하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마치 청소년을 노리고 장사하려는 것처럼 보니 너무 답답하다고 토로하더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도 “전자담배 업계에서도 ‘다른 건 몰라도 스쿨존 자판기 설치는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다”고 했다.
술·담배와 같은 규제 산업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공정한 심판과 참여자의 책임감이 맞물려야 한다. 한 쪽을 과잉보호하다 균형이 무너지면 자율적인 통제는 힘을 잃게 된다. 그 폐해는 국민건강권 악화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규제 도입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규제안을 조속히 처리해 청소년들이 흡연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