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야” 30년 전 이재현 CJ그룹 회장(당시 제일제당 상무)은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당시 제일제당 이사)에게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월트디즈니 만화영화를 총지휘했던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업계의 거장 데이비드 게펜이 함께 만든 ‘드림웍스SKG’에 투자하러 가는 길이었다.

제일제당의 드림웍스SKG 투자 이후 CJ(001040)그룹은 식품 회사에서 문화 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여전히 문화 콘텐츠 사업에 힘을 싣는 CJ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영화 사업은 상황이 조금 다른 듯하다. 아시아의 할리우드를 만들겠다던 CJ가 최근 영화 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CJ CGV는 내달 1일까지 아시아 지역 영화관 관리 지주사인 CGI홀딩스 지분을 되사올지 결정해야 한다. 2019년 미래에셋증권(006800)과 MBK파트너스의 투자를 받으며 일종의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CGI홀딩스 지분 28.57%를 3336억원에 넘기고, 회사를 2023년 6월까지 기업가치 2조원 이상으로 홍콩증시에 상장시키기로 했다. 실패 시 일정 수익률을 붙여 지분을 되사주거나(콜옵션) 최대주주 지분까지 제3자에 동반 매각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계약(콜앤드래그)을 체결했다.

그러나 상장 계획은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꼬이기 시작했다. 극장 문을 열 수 없어 CGI홀딩스 실적이 무너져 내린 탓이다. 낮아진 기업가치에 CJ CGV(079160)가 CGI홀딩스 지분을 되사올 확률은 극히 낮아졌다.

CJ CGV가 어떤 선택을 하든 쉬이 비판하긴 쉽지 않다. 결국 법적 테두리 안에서 내리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SK(034730)의 11번가 콜옵션 거부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그룹 전체의 평판 및 신뢰 하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재무적 투자자(FI)들은 지분 인수를 강제하는 풋옵션이 아닌 콜앤드래그 형태를 취했다. 풋옵션 없는 계약 덕분에 CJ CGV 부채 비율은 낮아졌다. FI가 ‘착해서’ CJ 편의를 봐준 것은 아니고, 대기업과의 관계 등 종합적인 사항을 고려했을 것이다.

CJ CGV가 계속 나몰라라 한다면, 앞으로 FI들도 보다 꼼꼼히 투자를 검토할 것이다.

유용한 투자 유치 수단이던 콜앤드래그는 사라지고, 기업들의 사업 확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CJ의 결정이 그들에게 어떤 부메랑이 돼 날아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