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기재부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제출한 서면 질의서 때문이다. 구 후보자에게 접수된 전체 서면질의는 1068건, 이 중 300건 이상이 천 의원의 질의다.
수치만 보면 천 의원은 누구보다 청문회에 성실히 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 후보자 또는 기재부 공무원들을 골탕먹이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질문 다수가 복사·붙여넣기를 통해 만든 반복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천 의원의 첫 질문은 ‘기재부 장관이 갖춰야 할 능력과 자질은 무엇인가’였다. 이어 ‘고위공무원이’, ‘기재부 공무원이’로 주어만 바뀐 질문이 이어졌다. 이후 ‘기재부 장관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언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지더니 역시 ‘고위공무원’, ‘기재부 공무원’으로 주어만 바뀌어 연속으로 나왔다.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질문 84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박정희, 전두환에 이어 윤석열, 이재명 대통령까지 총 12명에 대한 동일한 질문이 반복됐다. 각 대통령의 ▲리더십 ▲도덕성 ▲경제정책 ▲조세정책 ▲청렴도 ▲민주성 등을 평가해달라는 것이다. 구 후보자가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었나라는 착각이 들었다.
질문은 후보자의 가치관에서 취향을 묻는 것까지 이어졌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나 정치인, 전 기재부 장관부터 인상 깊게 읽은 책과 문헌, 기억에 남는 영화까지 인사 검증과 직접적인 관련이 적은 질문들이다.
문제는 이 같은 질문에 구 후보자는 물론 기재부 공무원들이 함께 서면 답변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천 의원의 질문은 구 후보자가 직접 답해야 한다. 그러나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둔 시기에는 해당 부처의 담당 공무원들이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관례이다 보니 결국 공무원의 부담도 상당히 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무에 지장을 받은 공무원뿐 아니라, 기재부 내 다른 공무원들까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기재부 공무원은 “갑질처럼 느껴진다”고 했고, 또다른 공무원은 “저런 일만 없어도 공무원의 업무 효율이 올라간다”고 했다.
천하람 의원은 왜 이런 질문들을 만들어 보냈을까. 의원실에 물어보니 “현안, 정책 효과 등을 물었을 때 의미 있는 답변이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면서 “후보자의 역사관, 역대 정부 정책, 국정 운영 철학 등을 통해 기재부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세세하게 알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질문들로 구 후보자가 기재부를 잘 이끌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예를 들어 구 후보자는 인상 깊은 TV프로그램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오징어게임’이라고 답했다. 천 의원은 이 답변으로 구 후보자의 자질을 얼마나 알게 됐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인사청문회는 장관 후보자의 정책 역량, 전문성, 이해 충돌 여부, 도덕성 등을 확인하는 자리다. 특히 검증 기간이 짧은 만큼 의미 있는 질문과 답변이 오가야 한다. 기재부 장관이 국가 전반의 경제를 아우르는 경제정책을 계획·수립·실행하는 역량을 갖춰야 하듯,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해 그를 날카롭게 검증할 자질을 갖춰야 한다.
천 의원이 ‘정치 개혁’과 ‘열린 정치’를 내세운 개혁신당의 원내대표라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더욱 아쉽다. 이러한 방식의 인사 검증은 새정치가 아닐 뿐더러 국민의 눈높이와 기대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