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용산에서 제일 유명한 ‘라떼는’(나 때는)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시절 얘기다.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회의는 물론, 비공개 자리에서도 나오는 말이다. 이 대통령이 주로 공직자의 자세를 당부할 때 그 시절을 예로 든다고 한다. 끝까지 책임졌더니 성난 민심이 움직이더라는 강력한 경험이다. 한 참석자는 “민원부터 바닥 행정까지 다 해본 대통령의 디테일”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5일 지역 군 공항 민원을 직접 손 보겠다며 광주로 내려갔다. 인구 9만 무안의 군수까지 초청해 대통령과 도지사, 시장, 군수가 4자대면을 하는 진풍경이 생중계됐다. 동네 이름을 줄줄 읊으며 주민에게 “소음이 얼마나 들리느냐”고 묻거나 부지 판매 차익을 두고 시장과 실랑이도 벌였다. 특정 지역엔 껄끄러운 문제지만 주민 피해를 외면하면 안 된다는 취지였다. 결국 정부가 직접 주관키로 하고, 대통령실 직속 기구를 꾸리는 것까지 즉석에서 지시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한 대통령 명의의 글이 매일 올라온다. 정상 외교 일정부터 군부대·기업·민원청취 일정, 고위공직자 인사에 대한 자평, 대통령 주재 회의는 물론 대통령 시계를 둘러싼 언론 보도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대변인 브리핑과 같은 내용이어도 별개로 낸다. 마침표를 꼭 대통령이 찍는다는 뜻이다. 만기친람형 리더십은 성남시의 한 비주류 정치인을 여의도 정치 1인자로, 그리고 제21대 대통령으로 만드는 동력이 됐다.

이런 ‘책임 정부’에서 지난 27일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정부는 수도권·규제 지역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전면 제한하고, 다주택자·갭투자자에 대한 대출을 막기로 했다. 한강벨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뛰자, 정부가 개입해 시장을 진정 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필요한 규제이지만, 불만 여론도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날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어떻게 대통령실과 무관한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통령실이 주도한 대책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했다. 국무회의 등을 통해 대통령이 보고 받은 바도 없다고도 했다. 또 “부동산 대책에 대해 대통령실은 아무 입장이나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라고 했다. 대변인 발언대로면, 초대형 대출 규제 대책을 대통령에 보고도 하지 않고 발표한 셈이다.

취임 후 3주 간 화려하던 대통령의 SNS도 그날은 침묵했다. 아무도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2시간 가까이 지난 뒤 대변인실 명의로 “부처의 현안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한 줄을 기자들에게 보낸 것이 전부였다. 익명을 청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용산이 부동산 규제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면 좋을 게 없다”고 했다. 만기친람이 무색할 만큼 조용한 오후였다.

대통령실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권 초 허니문 기간에 흠집이 날 불편함은 감수하기 싫어서다. 재집권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과오와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대변인의 잘못된 메시지에 대해서는 해명했어야 한다.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줬어야 했다. 껄끄러워도 외면 않겠다며 동네 민원까지 챙긴 대통령은 어디 있나. 국무회의 때마다 5200만 국민의 시간을 존중하자던 대통령은 왜 침묵했나. 대선 역대 최다 1728만표가 부여한 건 ‘칭찬 받을 권리’만이 아니다. ‘욕 먹을 의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