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이 지난 2022년 8월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원인의 하나로 ‘빗물 배수구’가 꼽혔다. 덮개나 물건으로 덮여 있거나 쓰레기로 막혀 있는 경우가 많아 빗물이 제때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침수 피해를 키웠던 것이다. 반지하 주택이 빠르게 물에 잠기는 바람에 일가족이 숨지는 참사도 생겼다.

이후 빗물 배수구가 폭우에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여러 조치가 취해졌다. 일부 지자체는 ‘스마트 배수구’를 도입했다. 평소에는 덮개가 닫혀 있다가 빗물이 닿으면 자동으로 열리는 장치다. 사물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이 동원됐다. 또 빗물 배수구에 쉽게 불에 타지 않는 재료로 만든 거름망을 씌우는 방식도 등장했다.

이런 시도는 모두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빗물 배수구를 막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설치와 관리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 곳곳의 빗물 배수구는 이번 장마철에도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았다. 3년 전 폭우에 따른 침수 사고로 반지하 주택 주민들이 숨진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 골목에 있는 빗물 배수구 안에는 담배꽁초와 마른 낙엽, 비닐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고무 재질 덮개나 대형 플라스틱 통으로 입구가 가로막힌 빗물 배수구도 있었다. 또 스마트 배수구가 설치됐지만 고장이 나거나 쓰레기에 걸려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빗물 배수구가 3분의 2 정도 막히면 침수 속도가 2배로 빨라지면서 침수 면적은 3.3배 넓어진다고 한다. 지난 2022년 8월 서울에 폭우가 내렸을 때 ‘강남역 수퍼맨’이 화제가 됐다. 이 남성이 배수구를 막고 있는 쓰레기를 맨손으로 긁어내자 종아리까지 차 있었던 빗물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빗물 배수구는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니다.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우리 모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구급 장치다. 장마에 앞서 빗물 배수구를 청소하지는 못할망정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틀어막아서는 안 될 일이다. 예산을 동원해 스마트 배수구나 거름망을 설치하는 조치도 있어야 하겠지만 이에 앞서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 빗물 배수구를 쓰레기통처럼 이용한다면 자신과 가족이 폭우 침수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