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출신에 부처 이끌면서 리더십도 있었고, 공신력이나 대중 인지도 높은 건 인정. 근데 산업 정책은 글쎄...”

최근까지 가장 유력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거론된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두고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평가다. 정 전 청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을 거쳐 질병청 초대 청장을 지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2년간 국내 방역을 총괄 지휘했다.

아쉽게도 배우자의 코로나 관련 주식 투자 의혹이 불거지며 장관직에서는 멀어졌지만, 그가 유력 후보로 꼽힌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복지부 내부에선 실무 경험이 풍부한 관료형 리더를, 의료계에선 의료 현장을 잘 아는 의사 출신 인사를 바랐다. 정 전 청장은 그 기준에 두루 부합했다.

하지만 산업계의 시선은 달랐다. 과거 복지부가 보건의료와 복지라는 두 축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바이오헬스 산업이라는 또 하나의 무거운 축이 명확히 자리잡았다. 한 제약사 임원은 “질병 관리 분야의 전문성은 확실하지만, 산업 육성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나 리더십은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정 전 청장의 산업 관련 이력으로는 2010년 11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보건산업기술과장을 맡으며 국가 신약개발 지원 프로젝트인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KDDF) 실무진으로 참여한 경험이 전부다.

이재명 정부에서 누가 복지부 장관이 되든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의정 갈등 사태와 연금 개혁 모두 시급한 과제다. 신임 장관은 제도 설계 이전에 불신부터 풀어야 한다. 의료가 지속 가능하려면 합리적인 보상 체계와 안정적 시스템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금 개혁은 더 고차원적인 문제이다. 고령화 속도는 빠르지만, 세대 간 부담 형평성과 수급의 지속 가능성 사이 접점을 찾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간 여러 정부가 공적 연금 개편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정쟁에 막혀 좌초됐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만큼, 결단력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은 이런 현안에 가려져 주목을 덜 받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무게감 있는 과제이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바이오 패권 다툼이 본격화한 지금이야말로, K바이오의 경쟁력을 키워야 할 적기라고 본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만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수출 규모가 10조원을 돌파해, 지난해 연간 실적(약 7조원)을 이미 넘어섰다. 한국은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많은 신약 후보물질(3233개)을 보유하고 있고, 업계는 2030년까지 매출 1조원 이상 대형 의약품(블록버스터)이 5개 이상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임 장관은 장차 한국의 먹거리가 될 바이오헬스 산업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신약 임상시험 규제는 여전히 까다롭고, 국내 임상시험의 규모·속도·신뢰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해외 주요 국가보다 낮은 약가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지금은 혁신 신약을 개발해도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부처가 바이오 정책을 나눠 맡다 보니 중복·불협화음이 잦고, 전략 부재 문제도 여전하다.

산업 구조도 취약하다. “기술은 있는데 임상시험할 돈이 없다”는 업계 하소연은 일상처럼 들린다. 대형 제약사를 제외하면, 97% 이상이 매출 기반이 취약한 바이오 벤처다. 상장 유지 요건 개선을 포함해 성과 창출이 쉽지 않은 산업 구조를 반영한 정책적 유연성도 함께 요구된다.

바이오헬스 산업은 단순한 신산업이 아니다. 감염병 대응과 같은 공중보건은 물론, 수출 중심 산업 전략과도 연결돼 있다. 국민 건강과 국가 안보, 그리고 미래 먹거리가 동시에 얽힌 분야다. 복지부는 이제 이 거대한 분야의 규제를 설계하고, 육성 전략을 조율하는 중심 부처가 돼야 한다. 의료·연금 개혁과 함께 산업까지 아우를 수 있는, 균형 잡힌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