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해보험이 금융감독원 불허에도 900억원의 후순위채권에 대한 조기상환(콜옵션)을 강행하면서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10년 만기 후순위채를 발행한 회사가 5년 뒤 콜옵션을 행사하는 것은 시장의 오랜 관례다. 롯데손보는 ‘금감원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근간보다 이 관례를 지키는 것을 우선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보였다.

금감원이 콜옵션 행사를 막은 이유는 롯데손보가 관련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험사가 콜옵션을 행사하려면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킥스)이 150%를 넘겨야 했다. 킥스는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다. 기준 미달인 롯데손보는 콜옵션 행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힌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콜옵션을 보류하기로 했다. 관례도 지키지 못했고, 말을 손쉽게 바꾸는 우를 범했다.

롯데손보가 보류한 콜옵션 행사는 이제 요원해졌다. 롯데손보의 올해 1분기 킥스는 유리한 모든 조건(예외모형·경과조치 후)을 적용해도 119.9%로 산출됐다. 앞선 기준치보다 약 30%포인트 낮은 수준이고, 최근 완화된 기준치(130%)보다도 10%포인트 넘게 차이가 난다. 현재 모든 보험사가 적용하는 원칙모형으로 보면, 롯데손보의 킥스는 경과조치와 무관하게 법정 기준치(100%)에 미달하게 된다.

롯데손보의 이해되지 않는 대응은 이뿐만이 아니다. 롯데손보는 콜옵션 보류 이후 금융 당국에 자본확충 계획안 제출을 검토 중이라면서 지난 13일 관련 내용을 공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13일이 되자 롯데손보는 또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롯데손보는 금감원이 자신들에게만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금융 당국이 지난해 연말 결산에서 원칙모형을 적용하라고 요구했는데, 롯데손보만 유일하게 예외모형을 사용해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이 법과 감독규정을 내밀며 “원칙대로 한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이러한 주장은 궁색해진다.

롯데손보에 남은 선택지는 금감원이 요구했던 자본확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건전성 지표를 끌어올려야 적기시정조치를 피하고, 보류했던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모펀드는 회사가 어떻게 되든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